85년 생입니다.1호 초등학교 졸업생이였던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집에서는 20분 정도 걸어가야 했고, 중학교 입구는 30도의 경사로로 되어 있었고, 처음 입학식 입구를 지났을 때, 후,,, 처음 보는 학우분들과 함께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교복과 어깨에 들어간 힘초등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나면 묘하게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현실은 중학교 배정 통지서를 받는 순간 시작되었죠. 해운대중학교 배정을 받고 당시 엘X트, 아X비 그리고 중소 브랜드의 교복이 중학교 앞에 쭉 있었다. 나의 첫 브랜드는 엘X트였다. 내가 봤을 때, 별 차이는 없었다. 중학교 올라가자마자 안 거지만 바지단을 줄이기 쉬운게 제일 좋은 교육이였던 것이다. 교복 리모델링 지금 생각해도 웃..
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내 힘으로 산 프로스펙스 가방과 프로월드컵 신발은 어린 날의 작은 개선문이었습니다.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준비를 위한 자율 적금 통장을 개설했습니다. 학년 전체가 다 가입을 했습니다.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6학년 마칠 때까지 작은 돈일지라도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저축을 하였습니다.이 돈은 엄마 호주머니에서도 나오고, 친인척들 주머니에서도 나왔습니다. 소정의 내 돈을 아끼기 위해 앞선 글처럼 해운대 바닷가를 돌며 빈병을 줍고 동전을 주워 모은 돈이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그 통장의 가치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그리고 나와의 약속이었습니다. 리베라 백화점에서 쥔 세상의 전부 그 통장을 깨고 난 뒤 엄마와 들린 곳은 바로 해운대 리베라 백화점이었습..
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 나는 그날 홈런을 쳤습니다. 하지만 그 홈런보다 더 오래 남은 건, 그 경기로 알게 된 한 친구였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동네를 걸어 다니다 시작된 야구 이야기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탐방이라 쓰고 산책이라 읽는다 6학년이 되자 슬슬 걱정이 생겼습니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가야 하는데, 다른 초등학교 아이들을 통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친구들과 탐방을 가기로 했습니다.말이 탐방이지, 사실 심심해서 온 동네를 걸어 다녔습니다. 축구부가 있던 해운대초등학교부터, 신도시에 새로 생긴 학교, 그리고 지금의 못골(?)까지. 안 가본 데가 없었습니다. 목적지도 없이 그냥 걷고 또 걸었습니다. 나에게는 그게 하나의 놀이였습니다.그러다 우연히 대우 마리나 아파트 쪽까지 ..
85년 생입니다. 그 시절 엄마의 일터는 내겐 놀이터였습니다.새벽이면 우리 아침을 챙겨놓고 옆집 할머니에게 애들 학교 늦지 않게 가는 것만 좀 봐달라고 하고 문을 나서던 엄마였습니다. 호텔 청소부터 유치원 알바까지, 가사만으로는 부족했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엄마는 늘 부지런히 움직이셨습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눈에 엄마의 일터는 그저 따라가서 맛있는 밥을 먹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운이 좋으면 용돈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유치원과 호텔, 엄마의 뒷모습을 따라가던 날들 정말 어렸을 때는 엄마를 따라 엄마가 일하셨던 유치원에 갔었고, 조금 더 자라서는 호텔 청소를 하셨던 엄마를 따라가 호텔에서 밥을 먹고 목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왜 ..
85년 생입니다. 그 시절 저에게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축구하러 가는 곳이었습니다. 10분 쉬는 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종만 치면 저는 조건반사처럼 운동장으로 튀어 나갔습니다. 그 시절 운동장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스트라이커, 가끔은 골키퍼 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습니다. 골을 넣는 자리죠. 그런데 골키퍼 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그라운드의 주인공도 별수 없이 골문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몸이 유연해서 날렵하게 뛰는 게 가능했거든요. 그날 모인 인원에 따라 공격수였다가 골키퍼였다가 했습니다.쉬는 시간은 딱 10분이었습니다. 2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면, 저는 교실 문을 박차고 운동장으로 달렸습니다. 10분 안에 공을 차려면 1초도 아까웠으니까요. 그리고 그 짧은 경기를, 저는..
85년 생입니다. 저는 마지막 도시락 세대입니다. 국민학교로 입학해 초등학교로 졸업한 세대이자, 도시락을 싸 다니다 급식으로 넘어간 세대이기도 합니다. 오늘 소시지를 구우며 문득 떠오른 그 시절 도시락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반찬에도 계급이 있었다그 시절 도시락 반찬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었습니다.최상위 반찬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장조림, 소시지, 계란말이. 이 셋 중 하나를 싸 오는 아이는 그날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흔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반에 마흔다섯 명이 있으면, 이런 반찬을 싸 오는 아이는 네 명쯤 됐을까요.그리고 그 시절에는 재미있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같이 밥을 먹는 무리끼리는 엄마들이 서로 연락해서 반찬을 나눠 싸 오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이 집이 계란말이, 내..
85년 생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에게 제일 맛있는 양념통닭은 엄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어주신 국민학교 때 그 양념통닭입니다. 어느 날 새벽, 외삼촌이 냉동 닭 한 박스를 들고 오면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새벽에 도착한 냉동 닭 한 박스 어느 날 새벽, 막내 외삼촌이 오셨습니다. 부산항에서 일하시던 외삼촌이었습니다."누나, 문 열어봐라.""이게 뭐고.""다른 건 아니고, 갑자기 냉동 닭이 몇 박스 생겨서 같이 먹을라고 들고 왔다. 내 다시 간데이."열어보니 냉동된 닭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먹어도 되는 거니 걱정 마시라는 말만 남기고 외삼촌은 돌아가셨습니다.엄마는 그 많은 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었습니다. 그 당시 냉장고가 큰 것도 아니었고, 주방이 좁았고,..
85년 생입니다. 저는 물개가 아니라 콜라병이었습니다. 그래서 깊은 곳은 안 갔습니다. 아니, 못 갔습니다. 그래도 여름이면 친구들과 장산 계곡으로 향했습니다.부모님 몰래 다녀오던 그 계곡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슬리퍼에 수건 하나, 장산 계곡 해운대에 살면 여름 피서지가 널려 있습니다. 바다도 있고, 옥상도 있고, 장산도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피서지가 옥상이었다면, 친구들과의 피서지는 장산 계곡이었습니다.장산 계곡은 입구부터 얕은 물이 많아 어린이들이 놀기 좋았습니다. 올라가다 보면 폭포도 두 개나 있었지만, 우리가 주로 놀던 곳은 입구였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무엇보다 자연이 만든 돌 미끄럼틀이 있었으니까요.준비물은 단출했습니다. 슬리퍼에 수건 하나 달랑 매..
85년 생입니다. 이번에는 반대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글이 제가 다가가지 못한 첫사랑이었다면, 이번에는 저를 먼저 좋아해 준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끝에는, 열여덟 살의 제가 고등학교 정문에서 한 후회가 있습니다. 5학년, 짝꿍이 된 아이 윤혜지(가명). 이쁘고 마음이 착했던 아이였습니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4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습니다. 미영이의 옆옆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였습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미영이 좋아하는 거 알았어, 바보 같은 놈아."5학년이 되고 같은 반이 되었고, 제 짝꿍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혜지는 적극적이었습니다.저를 좋아한다고 했고, 저를 안아주고, 뽀뽀도 해줬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주 당황스러웠고 싫은 내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