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UTREE.RI · 개인 자료를 다시 쓰는 프로젝트
쌓아 둔 기록을,
다음 일을 위한 자산으로 바꾸는 실험
40대 직장인·육아 아빠가 사진·메모·자료를 세컨드 브레인에 모으고, 그 안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콘텐츠와 디지털 도구 실험으로 확장해 갑니다. 자동화·채널 운영·수익화는 결과를 약속하는 목표가 아니라, 직접 해 보며 배우고 기록하는 과정입니다.
현재 단계: 자료 정리와 세컨드 브레인 구축
85년 생입니다. 저는 물개가 아니라 콜라병이었습니다. 그래서 깊은 곳은 안 갔습니다. 아니, 못 갔습니다. 그래도 여름이면 친구들과 장산 계곡으로 향했습니다.부모님 몰래 다녀오던 그 계곡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슬리퍼에 수건 하나, 장산 계곡 해운대에 살면 여름 피서지가 널려 있습니다. 바다도 있고, 옥상도 있고, 장산도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피서지가 옥상이었다면, 친구들과의 피서지는 장산 계곡이었습니다.장산 계곡은 입구부터 얕은 물이 많아 어린이들이 놀기 좋았습니다. 올라가다 보면 폭포도 두 개나 있었지만, 우리가 주로 놀던 곳은 입구였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무엇보다 자연이 만든 돌 미끄럼틀이 있었으니까요.준비물은 단출했습니다. 슬리퍼에 수건 하나 달랑 매..
85년 생입니다. 이번에는 반대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글이 제가 다가가지 못한 첫사랑이었다면, 이번에는 저를 먼저 좋아해 준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끝에는, 열여덟 살의 제가 고등학교 정문에서 한 후회가 있습니다. 5학년, 짝꿍이 된 아이 윤혜지(가명). 이쁘고 마음이 착했던 아이였습니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4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습니다. 미영이의 옆옆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였습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미영이 좋아하는 거 알았어, 바보 같은 놈아."5학년이 되고 같은 반이 되었고, 제 짝꿍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혜지는 적극적이었습니다.저를 좋아한다고 했고, 저를 안아주고, 뽀뽀도 해줬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주 당황스러웠고 싫은 내색을..
85년 생입니다. 그 시절 매주 월요일 아침은 지루했습니다. 지금 학교에는 없는 문화가 하나 있었습니다.매주 월요일,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교장선생님 훈화를 듣는 조회였습니다. 오늘은 그 지루했던 월요일 운동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월요일, 운동장으로 집합 매주 월요일, 0교시 종소리와 함께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집합했습니다. 2열 종대로 줄을 섰습니다."맨 마지막은 구호하지 마!"선생님의 이 말과 함께 우리는 1열부터 숫자를 세면서 앉기 시작합니다. 맨 마지막 사람은 구호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정신 차리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안 됩니다."20!""아... 돌았나.....""하지 말라니까!"자동 반사 같은 겁니다. 앞에서 숫자가 넘어오면 마지막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20!" 하고 외쳐버립니다..
85년 생입니다. 저의 첫사랑은 4학년 때 다가왔습니다. 고백한 적도 없고, 손 한번 잡아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꽃향기가 나던 샴푸 냄새와 설렘입니다. 오늘은 그 시절 4학년 교실로 가보려 합니다. 매달 봉사상을 받던 아이 "올해의 봉사상도 우리 그루가 받았습니다."봉사상. 친구들을 잘 돕는 사람에게 매달 투표로 주던 상입니다. 저는 3학년 새 학기부터 겨울방학 때까지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제가 착했던 건 아니고, 그냥 돕는 게 좋았고 행복했고, 도움을 받은 친구들의 미소가 좋았습니다.누가 무거운 걸 들고 있으면 같이 들었고, 누가 못 하고 있으면 가서 거들었습니다. 왁스로 바닥을 청소하는 날에는 제일 먼저 손을 들었고,..
한 줄 요약. "덥다.목차백 집에 여섯 집, 에어컨 없던 여름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수박화채해운대에서 동백섬까지, 그리고 해운대 시장새벽에 내려오던 길지금은 에어컨을 켜고 앉아 있습니다결론부터 말하면, 그 시절엔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선풍기도 비싸서 방에 한 대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름이 지금보다 견딜 만했습니다. 아니, 견딘 게 아니라 즐거웠습니다.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안주 삼아 수박화채를 먹던 그 여름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래된 주택 옥상, 돗자리가 깔린 여름밤백 집에 여섯 집, 에어컨 없던 여름2025년 서울의 열대야 일수는 46일이었습니다. 1908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기록이고, 평년(12.5일)의 3.5배가 넘습니다(기상청). 지구가 점점..
85년 생입니다. "엄마 앞에 있나? 어디 갔나?"할머니 집에서 가장 무서운 곳은 화장실이었습니다.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울산의 그 집, 할머니 집은 엄청 작았습니다. 다락방이 달린 단칸방이였고, 거기서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 나 누나, 삼촌들은 옥상에서 지냈습니다.이곳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앞선 이야기는 '할머니 집 가는 기차' 편에서 이어집니다.) 밖에 있던 푸세식 화장실 할머니 집 화장실은 집 안에 없었습니다. 밖에 있었습니다. '푸세식 화장실' 아래가 뻥 뚫린.. 그 다음은 상상에 맡길 수 있는 그곳, 지금 아이들에게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볼일을 보려면 신발을 신고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요.그래서 저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어머니나 아버지를 불..
85년 생입니다. 목욕탕은 아버지와 저 둘만의 시간이었습니다. 매주 일요일 오후 세 시,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집 앞에도 목욕탕이 있었지만 우리는 해운대 온천만 고집했습니다. 해운대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던 곳입니다. 어머니는 "물 더러운데 왜 새벽에 안 가노" 하고 잔소리를 하셨지만, 우리 부자에게는 별 타격이 없었습니다. 여름이면 물놀이하러 가던 그 길을, 일요일 오후에는 목욕 가방을 들고 걸어 내려갔습니다.해운대 온천, 바닷가 가는 길에 있던 목욕탕탕은 세 개였습니다. 온탕, 냉탕, 그리고 이름 모를 한약재가 들어간 탕.저는 탕에 들어가는 게 제일 싫었습니다. 발을 담그면 다리가 저려오는 찌릿한 느낌, 숨이 턱 막혀버릴 것 같은 그 느낌이 싫어서 아예 안 들어가려고 버텼습니다...
85년 생입니다. "부산행 SRT가 출발합니다."결론부터 말하면, 그때 그 기차는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해운대에서 울산까지, 창문을 열고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지를 수 있었던 그 기차 말입니다.그 시절 무슨 이유에서인지 할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으셨고, 할머니가 울산 현대중공업 급식소에서 일하셨습니다. 그 할아버지 댁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그 여정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선로를 가로질러 가던 해운대역 지금의 해운대역은 신시가지 구석에 있지만, 그 시절 해운대역은 바닷가가 보이는 아주 까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사방이 뻥 뚫려 있어서 동네 사람들은 선로를 가로질러 다니는 게 예사였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열차 시간에 늦기라도 하면, 자랑은 아니지만 쥐구멍을..
85년 생입니다. 온 나라가 무너지던 그때 우리 집은 오히려 형편이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저에게는 오랫동안 이상한 기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중학생이던 제가 겪은 그 시절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 서랍장 맨 밑의 금뭉치 1998년 1월, 텔레비전에서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나라 빚을 갚기 위해 장롱 속 금을 내놓자는 캠페인이었습니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서랍장 맨 아래 칸에는 통장과 함께 금붙이를 모아둔 자리가 있었는데, 그날 어머니는 그것을 통째로 꺼내셨습니다.거기엔 어머니의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야자수가 그려진 사각 펜던트 목걸이였습니다. 어린 눈에도 정말 예뻐서, 저는 지금도 그 모양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85년 생입니다. 저의 첫 일탈은 술도 담배도 아닌 '금 캐기'였습니다. 요즘 세대가 말하는 거창한 일탈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저 늘 놀던 골목을 벗어나, 걸어서 한 시간 거리까지 나가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겐 세상 끝까지 가보는 모험이었습니다. 그 모험의 세계로 저를 이끈 건 최현석이라는 친구였습니다. 그 시절 우리의 일탈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취미가 '돈'이었던 친구, 최현석 우리 반에는 최현석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박학다식한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이의 취미는 '돈'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의 취미가 돈이라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저에게 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알려준 사람이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우리의 첫 사업은 빈병 줍기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