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UTREE.RI · 개인 자료를 다시 쓰는 프로젝트

쌓아 둔 기록을,
다음 일을 위한 자산으로 바꾸는 실험

40대 직장인·육아 아빠가 사진·메모·자료를 세컨드 브레인에 모으고, 그 안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콘텐츠와 디지털 도구 실험으로 확장해 갑니다. 자동화·채널 운영·수익화는 결과를 약속하는 목표가 아니라, 직접 해 보며 배우고 기록하는 과정입니다.

현재 단계: 자료 정리와 세컨드 브레인 구축

01모으기흩어진 자료를 한곳에 모으고 현재 상태를 살핍니다.
02가치 찾기다시 쓸 수 있는 이야기와 지식을 구분합니다.
03콘텐츠화기록을 읽을 만한 글·대본·짧은 콘텐츠로 바꿉니다.
04자동화반복되는 작업을 도구와 코딩으로 어디까지 줄일지 실험합니다.
05확장하기시간·비용·결과를 보고 계속할 채널과 수익 실험을 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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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나에게 일탈이란,

Grutree 2026. 7. 14. 08:20

목차


    저의 첫 일탈은 술도 담배도 아닌 '금 캐기'였습니다.

    요즘 세대가 말하는 거창한 일탈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저 늘 놀던 골목을 벗어나, 걸어서 한 시간 거리까지 나가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겐 세상 끝까지 가보는 모험이었습니다.

    그 모험의 세계로 저를 이끈 건 최현석이라는 친구였습니다.

    해운대 바닷가 참고 사진
    해운대 바닷가 참고 사진

    취미가 '돈'이었던 친구, 최현석

    우리 반에는 최현석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박학다식한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이의 취미는 '돈'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의 취미가 돈이라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저에게 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알려준 사람이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

    우리의 첫 사업은 빈병 줍기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최고의 장소가 있었습니다. 바로 해운대 바닷가입니다.

    그곳은 그야말로 노다지였습니다.
    특히 최고의 명당은 따로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때는 바캉스족들이 텐트를 칠 수 있는 산책로 같은 공간이 있었거든요.
    그곳에 가면 무조건 천 원은 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주운 병을 가게에 가져가면 돈으로 바꿔주었고, 우리는 그 돈으로 맛있는 것을 사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린 저에게 그건 충격적인 발견이었습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병이 돈이 되고, 그 돈이 다시 먹을 것이 된다는 사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세상에는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는 방법이 있다는 걸, 저는 그 친구에게서 배웠습니다.

    우리의 두 번째 사업은 동전 줍기였습니다.
    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백사장으로 향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래사장에 앉았다 일어나면서 흘리고 간 동전들을 찾아다니는 겁니다.

    여름에는 빈병, 겨울에는 모래밭 계단 밑.
    특히 계단 밑은 무조건 500원은 확보되는 우리만의 성지였습니다.

    그날의 컨디션과 계절에 따라 종목을 정하고, 우리는 해운대를 훑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사 먹던 군것질거리의 맛이란.
    배고픔이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은 아마 이럴 때 쓰는 말일 겁니다.

    스포이드와 접시를 든 금 캐기 탐사대

    빈병 줍기가 시시해질 무렵, 최현석은 더 큰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금 캐기였습니다.

    그 친구는 방과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스포이드와 긴 접시를 챙겨 들고 나섰습니다.
    도대체 그런 걸 어디서 구해오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물어봐도 대답은 늘 똑같았습니다. "그냥 주웠다."

    부산 골목길 참고 사진
    부산 골목길 참고 사진

    우리의 금광은 도처에 있었습니다.
    장산에도 갔고, 학교 뒷산도 뒤졌고, 신동아 아파트 뒤편 공터도 훑었습니다.

    흙을 접시에 담고 물을 부어 살살 흔들면 반짝이는 것들이 남았습니다.
    물론 진짜 금을 캔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비슷한 것들은 꽤 많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대목이 지금도 웃깁니다.
    우리는 그렇게 찾아낸 것들을 보며 "이 크기로 뭐가 돈이 되겠니" 하면서 도로 버렸습니다.
    캔 것보다 버린 것이 훨씬 많았을 겁니다.

    그때는 그저 새로운 놀이로 하루가 재미있게 흘러간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부자가 될 기회를 제 손으로 직접 흙에 던져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란 가재와 저녁 8시의 귀가

    또 하나의 일탈은 가재 잡기였습니다.

    그 시절 우리 학교 뒷산에는 계곡물이 정말 맑았습니다.
    얼마나 깨끗했는지, 물속에서 파란색 가재를 잡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가재만이 아니었습니다.
    산에 토끼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으니,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만화 같은 이야기일 겁니다.

    그런데 왜 이걸 일탈이라고 부르냐고요?
    늘 집 앞 골목에서만 놀던 우리가,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한 시간 거리까지 나갔기 때문입니다.

    지도도 없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 그 한 시간은 세상의 끝처럼 멀게 느껴졌습니다.

    빈 유리병 참고 사진
    빈 유리병 참고 사진

    다만 우리의 일탈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겁이 많았습니다.
    아무리 멀리 나가도 저는 저녁 8시 이전에는 반드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반항의 최대치였습니다.

    세상 끝까지 갔다가도 8시 전에는 얌전히 밥상 앞에 앉는 것.
    그게 그 시절 저의 일탈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첫 일탈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혹시 어린 시절 금을 캐러 다녀본 분, 저 말고 또 계신가요?
    댓글로 그 시절 모험을 들려주세요.

    시리즈 이어 읽기

    이 글은 「85년 생입니다」 열일곱 번째 편입니다.

    ▶ 16편 — 아버지는 검도복을 만드셨지

    ▶ 다음 편 — 나에게 IMF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