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UTREE.RI · 개인 자료를 다시 쓰는 프로젝트

쌓아 둔 기록을,
다음 일을 위한 자산으로 바꾸는 실험

40대 직장인·육아 아빠가 사진·메모·자료를 세컨드 브레인에 모으고, 그 안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콘텐츠와 디지털 도구 실험으로 확장해 갑니다. 자동화·채널 운영·수익화는 결과를 약속하는 목표가 아니라, 직접 해 보며 배우고 기록하는 과정입니다.

현재 단계: 자료 정리와 세컨드 브레인 구축

01모으기흩어진 자료를 한곳에 모으고 현재 상태를 살핍니다.
02가치 찾기다시 쓸 수 있는 이야기와 지식을 구분합니다.
03콘텐츠화기록을 읽을 만한 글·대본·짧은 콘텐츠로 바꿉니다.
04자동화반복되는 작업을 도구와 코딩으로 어디까지 줄일지 실험합니다.
05확장하기시간·비용·결과를 보고 계속할 채널과 수익 실험을 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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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아버지는 검도복을 만드셨지, 야이야이야~♪

Grutree 2026. 7. 13. 20:07

목차


    제가 그토록 싫어했던 그 냄새가
    사실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 냄새였습니다.

    아버지가 검도복 만드는 일을 시작하시면서 우리 집의 공기가 바뀌었습니다.
    우린 행복했지만, 냄새만큼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서는 늘 퀴퀴한 검도복 냄새가 났고,
    손톱에는 남색 물이 들어 있었으니까요.

    어린 저는 그 냄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부산 봉래동 스쿠터 참고 사진
    부산 봉래동 스쿠터 참고 사진

    오토바이 뒷자리, 해운대에서 문현동까지

    건설 붐이 한창이던 시절, 아버지는 사우디와 일본을 오가며 일하셨고 이후 울산 조선소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그러다 가족 중 한 분이 검도복 만드는 일을 하시게 됐고, 아버지는 "가족을 도와야 한다"며 그 일에 뛰어드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옮겨왔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하루는 오토바이로 시작됐습니다.
    해운대에서 문현동까지, 매일 그 먼 길을 오토바이로 오가셨으니까요.

    주말에도 일하러 나가셔야 했기에, 저는 가끔 아버지 뒤에 매달려 함께 출퇴근길에 오르곤 했습니다.

    사실 그 시절 부산의 공기는 지금보다 훨씬 탁했습니다.
    매연 냄새가 코를 찌를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의 그 쾌감만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등을 붙잡고 얼굴로 바람을 받으며 달리던 그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아버지의 근무지는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
    그 언덕을 오르려면 계단을 밟아야 했는데, 얼마나 가팔랐는지 모릅니다.
    아이의 다리로 그 계단을 오르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때는 그저 힘든 길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그 길을 매일, 그것도 주말까지 오갔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됐습니다.

    남색 손톱, 그리고 그 냄새

    검도복은 재봉틀로 만듭니다.
    그리고 검도복에는 유난히 남색 실을 많이 씁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아버지의 손톱에는 언제나 남색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 색깔이, 저에게는 그냥 아버지 손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검도복 참고 사진
    검도복 참고 사진

    그리고 냄새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그건 남색 염색약 냄새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 저에게 그건 그냥 아버지 냄새였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어린 저는 그 냄새가 너무나 싫었습니다.
    아버지가 가까이 오시면 슬쩍 몸을 피하기도 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때는 그게 무슨 냄새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냄새라는 것을요.

    도움은 늘 외가에서 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결국 그 일을 그만두게 되셨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가족의 일이라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이후 우리 집이 무척 어려워졌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저는 그 사실을 어른들의 말이 아니라 눈으로 알았습니다.
    외할머니가 쌀을 들고 오셨고, 이모와 외삼촌들이 찾아와 반찬을 사주고 맛있는 것을 사 먹여주셨으니까요.

    아이는 어른들의 대화를 다 알아듣지 못해도, 집으로 들어오는 쌀자루의 의미는 압니다.

    돌이켜보면 그랬습니다.
    우리 집이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준 것은 언제나 외가였습니다.

    그 사실에 대해 저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길게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그때 그 쌀자루가 없었다면 우리 가족이 어떻게 그 시절을 건넜을지 모르겠다는 것만은 분명히 적어두고 싶습니다.

    시장 쌀 포대 참고 사진
    시장 쌀 포대 참고 사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절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어려웠던 기억이 아닙니다.

    직접 만든 검도복을 입어보시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재봉틀 앞에서 완성된 옷을 몸에 대어보시던 그 모습이, 어린 제 눈에는 정말이지 멋있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멋있음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를요.
    이제는 압니다. 그건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완성해낸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그 냄새가 그립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에게는 어떤 냄새가 났나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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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85년 생입니다」 열여섯 번째 편입니다.

    ▶ 15편 — 워크맨과 MP3의 추억

    ▶ 다음 편 — 나에게 일탈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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