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UTREE.RI · 개인 자료를 다시 쓰는 프로젝트
쌓아 둔 기록을,
다음 일을 위한 자산으로 바꾸는 실험
40대 직장인·육아 아빠가 사진·메모·자료를 세컨드 브레인에 모으고, 그 안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콘텐츠와 디지털 도구 실험으로 확장해 갑니다. 자동화·채널 운영·수익화는 결과를 약속하는 목표가 아니라, 직접 해 보며 배우고 기록하는 과정입니다.
현재 단계: 자료 정리와 세컨드 브레인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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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그 시절엔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선풍기도 비싸서 방에 한 대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름이 지금보다 견딜 만했습니다. 아니, 견딘 게 아니라 즐거웠습니다.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안주 삼아 수박화채를 먹던 그 여름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백 집에 여섯 집, 에어컨 없던 여름
2025년 서울의 열대야 일수는 46일이었습니다. 1908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기록이고, 평년(12.5일)의 3.5배가 넘습니다(기상청).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그 시절엔 에어컨을 가진 집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1993년 우리나라 가구의 에어컨 보유율은 6%였습니다. 1996년에도 14%였고요. 백 집 중 여섯 집. 그게 제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현실이었습니다. 그 숫자는 1998년 24%, 2001년 36%로 늘었고, 2018년에는 87%가 됐습니다(한국갤럽).
그러니까 우리는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났습니다. 선풍기 한 대와 부채, 그리고 등목은 필수였습니다.
선풍기는 거실에 한 대였습니다. 그 앞자리를 두고 형제끼리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누가 먼저 눕느냐, 고개가 어느 쪽으로 돌 때 몇 초를 더 쬐느냐. 결국 엄마가 "회전으로 돌려놔라" 하시면 그걸로 상황이 정리됩니다. 그러면 3초 시원하고 6초 더운 여름이 시작됩니다.
밤이 되면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웠습니다. 장판이 뜨뜻해지면 몸을 옆으로 굴려 아직 차가운 자리를 찾습니다. 그 자리도 금방 더워집니다. 그러면 또 굴립니다. 그러다 보면 방을 한 바퀴 돌아 있습니다.
그래도 더울 때는 대야에 물을 받아 발을 담갔습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살았냐고 물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게 그냥 여름이었습니다.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수박화채
열대야가 오면 우리에겐 비장의 수단이 있었습니다. 바로 옥상입니다.
방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이 더워지면 우리는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벌러덩 누웠습니다. 방보다 훨씬 시원했습니다. 바람이 지나갔고, 하늘이 열려 있었고, 별이 보였습니다.
옥상에 올라가는 것도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돗자리 하나, 베개 하나, 모기향 하나. 모기향은 꼭 발밑에 놨는데, 바람이 방향을 바꾸면 연기가 얼굴로 옵니다. 그러면 다들 자리를 옮깁니다. 한참 뒤에 보면 처음 자리에서 다들 한 칸씩 밀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수박화채가 있었습니다. 수박을 숭덩숭덩 잘라 넣고 얼음을 띄운 그 대접. 엄마가 사이다를 부으면 그날은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숟가락은 하나였고, 대접도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순서가 있었습니다. 제일 어린 사람부터 먹는 게 우리 집 규칙이었는데, 그게 저였습니다.
옥상에 누워 수박화채를 떠먹으며 우리는 별을 봤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누구는 축구선수, 누구는 과학자. 저는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아마 그날그날 달랐을 겁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던 그 여름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있습니다. 그것도 시스템 에어컨입니다. 아이들은 시원한 방에서 잘도 잡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옥상에 누워 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은 것도 있는 법입니다.
해운대에서 동백섬까지, 그리고 해운대 시장
여름의 낮에는 해운대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해운대에 살면 좋은 점이 이겁니다. 더우면 바다로 가면 됩니다.
우리는 바닷가를 따라 동백섬까지 걸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 먼 거리인데, 그때는 그게 그냥 산책이었습니다. 뜨거운 모래를 밟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아무 목적 없이 걸었습니다.
모래가 너무 뜨거워서 발을 못 디디는 구간이 있습니다. 그러면 파도가 닿는 젖은 모래로만 걸었습니다. 그 선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동백섬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는 해운대 시장이 있었습니다. 먹거리가 가득했습니다. 떡볶이집이 있었고, 제가 제일 좋아하던 골목 국숫집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2대째 이어서 하고 있더군요.
여름날 바다를 걷고 시장에서 먹던 그 국수 한 그릇. 땀을 흘리며 뜨거운 국물을 먹는 게 이상하게 시원했습니다. 에어컨이 없어도 여름이 견딜 만했던 이유가 아마 이런 것들이었을 겁니다.
새벽에 내려오던 길
옥상에서 그대로 잠든 날도 있었습니다.
한참 자다 보면 새벽에 추워서 깹니다. 여름인데도 새벽 옥상은 서늘합니다. 돗자리 밑에서 시멘트 찬 기운이 올라옵니다. 그러면 엄마가 먼저 일어나서 한 명씩 깨웁니다.
"들어가서 자라. 감기 걸린다."
돗자리를 말아 들고, 베개를 안고, 빈 대접을 들고 계단을 내려옵니다. 그 계단이 어둡습니다.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내려왔습니다. 방에 들어가면 낮보다 훨씬 시원해져 있습니다. 그제야 이불을 덮고 다시 잡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팔뚝에 돗자리 자국이 나 있습니다. 그 자국을 보면서 아, 어제 옥상에서 잤지, 하고 기억합니다. 그런 아침이 여름에 몇 번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집도 없고 그 옥상도 없습니다. 몇 년 전에 그 동네를 지나간 적이 있는데, 건물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올라가 볼 옥상이 없어진 겁니다.
지금은 에어컨을 켜고 앉아 있습니다
지금은 에어컨을 켜고 집 안에 있습니다. 시원합니다. 그런데 그 시절의 여름처럼 즐겁지는 않습니다.
그때 옥상이 좋았던 건 시원해서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 한 자리에 누워 같은 하늘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다들 각자 방에서 각자 화면을 봅니다. 시원하게요.
여러분은 에어컨 없던 여름을 어떻게 나셨나요? 옥상이었나요, 마루였나요, 아니면 학교 운동장이었나요? 댓글로 그 시절 여름을 들려주세요.
참고 자료 기상청 '2025년 여름철 기후특성' 한국갤럽 '에어컨 보유율 추이(1993-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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