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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민학교 때 최전방에서 골을 넣던 스트라이커는 중학교에 올라오자마자 전혀 다른 현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해운대중학교 반별 축구, 그 살벌한 현실
해운대중학교에는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아이들이 북적였고, 특히 해운대초등학교 출신 축구부 아이들까지 버티고 있었습니다. 45명 남짓한 우리 반에서 스트라이커, 중앙 미드필더, 수비수 같은 핵심 요직에 제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었습니다. 골목길 축구와 우정의 연장선 같았던 국민학교 운동장과 달리, 중학교 반별 축구는 지는 쪽이 다른 반 아이들의 간식을 사줘야 하는 살벌한 전쟁이었습니다. 덩치 큰 녀석들이 중앙을 떡하니 가로막고 선 그라운드 위에서, 저는 살아남기 위해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경기 운영 측면에서도 달랐습니다. 라떼의 국민학교 시절에는 골목 축구나 운동장 축구나 공만 잡으면 상대 골문을 향해 내달리면 그만이었고, 슈팅 하나에 온 동네가 떠들썩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때는 반별 축구 대회가 시작되자마자 그 환상은 가사 없이 깨졌습니다.
일단 볼을 잘 차는지, 전술, 전략을 잘 이해하고 움직이는지가 중요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센터백 자리는 체격이 좋은 녀석들의 몫이었고, 스트라이커는 드리블과 슈팅 능력, 미드필드는 스루패스 같은 골 정확성과 스피드가 필요했습니다. 사실 골키퍼는 여기 가기도 애매하고, 저기도 애매하고 애매애매한 사람이 하는 포지션이었습니다.
저는 빠른 발을 살려 측면으로 밀려나거나, 남들이 선뜻 나서지 않는 골키퍼를 맡았습니다. 골대 앞에서 상대의 매서운 강슛을 막아내야 할 때면 겁도 났지만, 몸을 날려 공을 쳐낼 때의 짜릿함은 묘한 중독성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만의 유연성이 있었기에 그 험난한 주전 자리를 어떻게든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유연성과 속도로 버텨낸 골문 앞과 측면
중학교 운동장은 국민학교 때보다 왠지 더 좁고 빽빽해 보였습니다. 골키퍼는 팀의 승패를 온몸으로 떠안는 막중한 자리였습니다.
지금은 180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을 정도로 키가 작았습니다. 그리고 팔다리가 길쭉하거나 체격이 압도적으로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대신 몸을 쓰는 감각과 남다른 유연성이 있었습니다.
공이 날아오는 궤적을 눈으로 좇으며 허리를 비틀고 몸을 던져 막아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상대 선수가 날린 회심의 슈팅을 온몸을 날려 쳐낼 때마다 터져 나오던 팀 친구들의 환호성이 아직도 귓가를 맴돕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트라이커는 아니었지만, 골문 앞에서 혹은 측면 터치라인을 따라 악착같이 달리던 그때의 감각은 여전히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습니다.
벤치와 그라운드 사이에서 자라던 우리
축구가 끝나고 흙먼지가 허옇게 쌓인 양말을 신은 채 교실로 돌아오면, 손, 어깨, 무릎에는 어김없이 멍든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승패 하나에 울고 웃던 그 시절의 반별 축구는 단순한 체육 시간 그 이상이었습니다.
어설픈 체격 조건을 유연성과 악프로 메우며 악착같이 버티던 그라운드 위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습니다. 땀에 쩔어 벌컥벌컥 마시던 미지근한 수돗물 한 모금과 친구들의 거친 숨소리가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 뒤에는 꼭 찾아왔던 졸음 시간 그래서 어쩌면 5교시에는 예체능 또는 가정이나 교련이 배치되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때 그 시절, 반별 축구 대회에서 여러분은 주로 어떤 포지션을 맡으셨나요? 지면 간식을 사야 했던 그 살벌한 기억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판 승부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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