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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워크맨과 MP3의 추억

85년 생입니다. 우리 집 음악의 역사는 아버지가 일본에서 들고 온 캐리어에서 시작됐습니다. 캐리어 안에서는 전축이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부품을 하나하나 조립하시고 마침내 전원을 켜던 순간, 갑자기 터져 나온 그 큰 소리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전축을 시작으로 국민학교 때는 워크맨, 중학교 때는 CD플레이어와 MD,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아이리버 MP3까지. 제 십 대는 음악을 담는 그릇이 계속 바뀌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휴대폰에서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세상 모든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그때는 노래 한 곡을 갖기 위해 참 많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집 음악의 변천사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아버지의 캐리어에서 나온 SONY 전축 국민학교 시절 우리 집 가보 1호는, 일본에서 건너온..

85년 생입니다. 2026. 7. 13. 15:52
[85년 생입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의 목소리

85년 생입니다. 카세트테이프에 그토록 마음을 두었던 이유를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그 시작은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이사를 가던 날, 다락방에서 발견한 낡은 테이프 하나였습니다. 그 안에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 우리 가족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예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래된 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해 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울컥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그 안에 담긴 것이 소리가 아니라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막으로 보낸 카세트테이프 1980년대,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을 가셨습니다. 그 시절 중동 건설 현장은 많은 한국 가장들이 가족을 위해 떠나던 곳이었습니다. 국제전화는 너무 ..

85년 생입니다. 2026. 7. 13. 10:30
[85년 생입니다.] 부산갈매기 아인교, 사직야구장의 추억

85년 생입니다. 내가 야구팬이 된 건 롯데가 잘해서가 아니라 '아주라', '마!', 부산 갈매기 같은 응원 문화 때문이었습니다. 여덟 살, 아버지와 이모부의 손을 잡고 처음 밟은 사직야구장. 저는 그날 야구가 아니라 부산이라는 도시를, 그리고 부산 사나이의 자부심을 배웠습니다. 그 여름날의 사직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아주라!" — 여덟 살 인생을 바꾼 파울볼 여덟 살, 아버지와 이모부를 따라 처음 사직야구장에 갔습니다. 저는 선수가 누구인지 모르고 처음 찾아갔었습니다. 그 당시 사직운동장은 그저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어마어마하게 시끄럽다는 것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제 앞자리 아저씨에게 파울볼이 날아왔습니다. 아저씨가 공을 잡는 순간, 주변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85년 생입니다. 2026. 7. 12. 22:26
[85년 생입니다.]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90년대 국민학교 운동회

85년 생입니다. "저 선수 죽어라 달리고 있는데요… 아! 아쉽습니다, 역전을 허용했습니다!"그 시절 운동회는 학교 행사가 아니라 마을 잔치였습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온 동네가 학교 운동장으로 출근하던 날이었죠.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축제였지만, 어른들에게는 학부모 모임이였습니다. 부모님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돗자리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고, 담소를 나누며 서로를 익히는 자리였으니까요. 다만 제 기억 속 '진짜' 운동회는 4학년까지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가족들도 오지 않았고, 예전만큼 심장이 뛰지도, 승부욕이 불타오르지도 않았습니다. 만국기 아래 함성이 울리던 그 하루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온 동네가 모이던 잔칫날 우리 학교, 해동초등학교는 운동장이 아주 넓었고 가장자리에 나무가 많..

85년 생입니다. 2026. 7. 12. 21:10
[85년 생입니다.]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 - 제사

85년 생입니다.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의식이었지만 그 의식을 실제로 떠받친 것은 언제나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요즘 제사 문화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을 보며, 저는 원망보다 안도에 가까운 감정을 느낍니다. 어동육서(고기는 서쪽, 생선은 동쪽), 홍동백서(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상차림의 법도는 그토록 엄격했지만, 정작 그 상을 차리는 규칙은 단순했습니다. 여자는 부엌, 남자는 제삿상 앞. 보수적인 장남의 집에서 일 년에 다섯 번의 제사를 지켜본 아이의 눈으로, 그리고 이제야 어머니의 고생이 보이는 어른의 눈으로, 그 시절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일 년에 다섯 번, 장남 집의 숙명 우리 아버지는 장남이었습니다. 제사를 지내려면 하루 전날 할머니 댁에 미리 가 있어야 했고, 벌초..

85년 생입니다. 2026. 7. 11. 14:47
[85년 생입니다.] 사라진 골목 놀이 이야기

85년 생입니다. "밥 무러 온나!" 구수한 엄마의 목소리가 골목을 울리면, 그게 우리 하루의 마침표였습니다.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건 골목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그 골목을 채우던 '정(情)'이었습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제가 서울 아내를 만나 서울로 이사를 오고,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이 바로 이 변화인데요. 삭막한 골목, 고요한 골목, 이제는 차만 다니는 골목. 골목이 놀이터였고 온 동네가 한 가족 같던 우리 세대 시절과, 학원과 집만 오가는 지금의 세대 아이들의 하루를 나란히 놓고, 세 가지 장면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친구들 집이 다 있었다. 제가 자란 부산의 골목은 길이 아니라 하나의 기지와 같았습니다. 시골도 아니었는데 그 시절엔 아이들이 골목마다 바글바..

85년 생입니다. 2026. 7. 11. 14:41
[85년 생입니다.] 일본식 캐릭터 & 브랜드 볼펜의 등장.. 두둥,

85년 생입니다. 팬시점의 등장은 새로운 자본주의 세상을 일깨워준 사건이었습니다.어수선한 문방구의 시대가 저물고, '취향'이라는 것이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저에게 그 변화는 국민학교 4학년 때, 학교로 올라가는 길목 문방구 옆에 처음 들어선 아트박스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부산 해운대에서 문방구에 둘러싸여 자란 아이의 눈에 그 변화가 어떻게 비쳤는지,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문방구 다섯 개의 왕국 제가 다닌 초등학교는 부산 해운대 해동초등학교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한 건, 학교 하나를 둘러싸고 문방구가 무려 다섯 개나 있었습니다. 학교로 올라오는 길에 두 개, 옆 해운대 여중으로 가는 길에 하나, 그리고 초등학교 정문 앞에 두 개. 등하굣길 어디로 가도 문방구를 지나칠 수밖에 없는, 그..

85년 생입니다. 2026. 7. 10. 12:59
[85년 생입니다.] 야반도주가 가능했던 정(情)든 시절

85년 생입니다. 계는 은행이 멀던 시절 서민들이 만든 금융 시스템이자 정(情)으로 굴러가던 신뢰의 공동체였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이 문화가 어린 시절 저에게 가장 신기하면서도, 가장 아팠던 기억입니다. 저희 집이 직접 겪은 이야기와 함께 그 시절 계 문화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품앗이에서 곗돈으로: 서민들의 금융 시스템 계의 뿌리는 품앗이에 있습니다. 모내기나 김장처럼 혼자서는 벅찬 일을 이웃과 노동력을 주고받으며 해결하던 상부상조의 정신이 돈의 형태로 바뀐 것이 바로 계입니다. 은행 문턱이 높고 대출이 어렵던 시절 그리고 사는 게 바빠서 아침에 출근하면 밤이 늦어서야 귀가 했던 그 시절, 서민들은 목돈이 필요할 때 이 방식에 기댔습니다.원리는 단순합니다. 열 명 남짓이 매달 일정..

85년 생입니다. 2026. 7. 9. 07:11
[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 글 발행 이유! - 그때의 그리움과 이 시대의 성장

1985년생입니다. 제가 보고 자란 1980~90년대는 6·25 전쟁의 상흔 ('다치거나 긁혀서 살갗에 남은 '상처의 흔적')을 딛고 일어나,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며 비로소 경제가 태동하고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다들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생업 전선에 뛰어드신 아버지와 가정을 돌보시던 어머니의 땀방울 속에는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분명 더 나아질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 역시 바퀴벌레와 꼽등이가 출몰하던 단칸방 월세에서 시작해 2층집 전세를 거쳐 23평 아파트에 닿기까지, 서로를 다독이며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우리 집도, 그리고 우리 사회도 점진적으로 풍족해지던 그야말로 역동적인 격변기였습니다. 제가 이 시절의 이야기를 굳이 기록하려는 것은 단순한 추억팔이 때문..

85년 생입니다. 2026. 7. 9. 07:01
[85년 생입니다.] 육성회비의 기억

85년 생입니다. 우리 시절 국민학교는 무상교육이었다고는 하나 사실 아니었습니다. 매달 학교에 내야 하는 돈이 있었고, 그 돈은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습니다. 1985년생인 저에게 그 선은 육성회비 봉투와 우유 급식이었습니다. 웃으며 쓰던 오락실과 문방구 이야기와 달리, 오늘은 조금 담담하게 그 시절 교실의 뒷면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매달 돌아오던 봉투: 육성회비라는 숙제 "엄마! 선생님이 육성회비 가져오래요~"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육성회비', 정식 명칭이 육성회비인지 월사금인지는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고, 아이였던 저에게는 그냥 '매달 학교에 내야 하는 돈'이었습니다. 국민학교는 분명 의무교육이라 수업료가 없었는데, 학교 운영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학부모에게 걷는 육성회비가 사..

85년 생입니다. 2026. 7. 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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