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UTREE.RI · 개인 자료를 다시 쓰는 프로젝트
쌓아 둔 기록을,
다음 일을 위한 자산으로 바꾸는 실험
40대 직장인·육아 아빠가 사진·메모·자료를 세컨드 브레인에 모으고, 그 안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콘텐츠와 디지털 도구 실험으로 확장해 갑니다. 자동화·채널 운영·수익화는 결과를 약속하는 목표가 아니라, 직접 해 보며 배우고 기록하는 과정입니다.
현재 단계: 자료 정리와 세컨드 브레인 구축
계는 은행이 멀던 시절, 서민들이 만든 금융 시스템이자정(情)으로 굴러가던 신뢰의 공동체였습니다.지금은 거의 사라진 이 문화가 어린 시절 저에게는 가장 신기하면서도, 가장 아팠던 기억입니다.저희 집이 직접 겪은 이야기와 함께 그 시절 계 이야기를 적어 보겠습니다.품앗이에서 곗돈으로계의 뿌리는 품앗이에 있습니다.모내기나 김장처럼 혼자서는 벅찬 일을 이웃과 힘을 주고받으며 해결하던 상부상조의 정신이 돈의 형태로 바뀐 것이 바로 계입니다.은행 문턱이 높고 대출이 어렵던 시절이었고, 다들 사는 게 바빠서 아침에 나가면 밤늦게야 들어오던 시절이었습니다.서민들은 목돈이 필요할 때 이 방식에 기댔습니다.원리는 단순합니다.열 명 남짓이 매달 일정액을 모아서 순서대로 한 사람씩 목돈을 가져가는 겁니다.딸 시집보낼 때, ..
1985년생입니다. 제가 보고 자란 1980~90년대는 6·25 전쟁의 상흔 ('다치거나 긁혀서 살갗에 남은 '상처의 흔적')을 딛고 일어나,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며 비로소 경제가 태동하고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다들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생업 전선에 뛰어드신 아버지와 가정을 돌보시던 어머니의 땀방울 속에는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분명 더 나아질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 역시 바퀴벌레와 꼽등이가 출몰하던 단칸방 월세에서 시작해 2층집 전세를 거쳐 23평 아파트에 닿기까지, 서로를 다독이며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우리 집도, 그리고 우리 사회도 점진적으로 풍족해지던 그야말로 역동적인 격변기였습니다. 제가 이 시절의 이야기를 굳이 기록하려는 것은 단순한 추억팔이 때문..
국민학교 다닐 때는 매달 학교에 내는 흰 봉투가 있었습니다.육성회비 봉투였습니다.봉투 하나, 우유팩 하나.그 작은 것들에도 교실의 앞면과 뒷면이 있었습니다.매달 돌아오던 봉투: 육성회비라는 숙제"엄마, 선생님이 육성회비 가져오래요."한 달에 한 번씩 흰 봉투를 받아 왔습니다.봉투에는 학년, 반, 이름을 쓰는 칸이 있었고 그 안에 돈을 넣어 선생님께 내면 됐습니다.그런데 우리 집은 늦게 내는 달이 있었습니다.그날 저녁이면 방문 너머로 엄마 아빠의 전화 소리가 들렸습니다.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였습니다.무슨 말인지는 다 알아듣지 못했습니다.그래도 그날은 괜히 먼저 자는 척했습니다.다음 날 학교에 가면 봉투가 든 책가방이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선생님이 아직 안 낸 사람을 찾을까 봐, 친구들이 알까 봐 괜히 고..
국민학교 앞 문방구는 그 시절 아이들의 백화점이자 놀이터였습니다.준비물만 파는 곳이 아니라 간식과 게임, 그리고 동네 신용까지 돌아가던 아이들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1985년생인 저는 문방구를 정말 좋아했습니다.아니, 좋아했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등굣길에는 준비물을 사러, 하굣길에는 하루의 마무리와 간식을 위해 하루 2회 이상 꼬박꼬박 문방구로 출근했습니다.그 작은 가게 이야기를 적어 보겠습니다.쫀디기부터 순대 꼬치까지그 시절 문방구에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간식들이 가득했습니다.쫀디기, 월드컵, 어포, 똘똘이, 꺼벙이, 나나콘.이름만 들어도 침이 고이는 이 과자들은 100원, 200원이면 살 수 있는 최고의 간식이었습니다.어른들은 불량식품이라 불렀지만,아폴로나 쫀드기 같은 과자들은 식약처 검사를 정식으..
국민학교 6학년 때 친구 집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봤습니다.친구가 정사각형 모양의 플로피 디스크를 넣고 검은 화면에 cd, dir 같은 글자를 치니 갑자기 화면이 바뀌었습니다.거기서 페르시아의 왕자가 튀어나왔습니다.벽돌을 밟고, 점프하고, 칼로 싸우는 왕자의 움직임이 그렇게 신기했습니다.가시에 찔리고 칼에 베이면 빨강색 피가 튀었습니다.어린 눈에 살짝 무서웠지만 신기했습니다.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왕자를 보며 "아, 게임에서는 목숨이 여러 개구나"라고 처음 배웠습니다.디스크를 넣으면 드르륵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그 소리가 잠깐 나다가 멈추면 게임 화면이 뜹니다.그 기다리는 몇 초가 그렇게 길었습니다.그 일 때문에 저는 컴퓨터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졸랐습니다.컴퓨터 학원의 배신집 앞 컴퓨터 학원에 들어갔을 때..
저에게 동네 오락실은 단순한 게임장이 아니라그 시절 아이들의 사회이자 해방구였습니다.게임 실력으로 서열이 정해지고 눈치와 처세를 배우던 곳이었고,그 옆 좁디좁은 코인노래방은 노래와 연애,그리고 첫 뽀뽀가 시작되던 장소이기도 했으니까요.그러니 용돈을 받으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도 오락실이었고,동전이 떨어지면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며누가 흘렸을지 모를 백원짜리를 찾아다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합니다.하필 이름도 '뽀뽀오락실'이었던 우리 동네 지하 오락실 이야기입니다.지하 계단 아래의 격투장제 아지트는 동네 지하의 뽀뽀오락실이었습니다.계단을 내려가면 어둑한 공간에 게임기 불빛과 버튼 두드리는 소리가 가득했고,용돈만 생기면 곧장 그 계단으로 직행했죠.보글보글 같은 협동 게임으로 몸을 풀고 나면,진짜 승..
우리는 라디오 감성 세대입니다.저녁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는 라디오 앞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자랐습니다.우리 누나는 방송국에 편지 사연을 보냈지만 한 번도 당첨되지 않았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화려한 댄스와 가사가 제 눈을 스쳐 지나갔습니다.그건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었습니다.서태지와 아이들은 단순한 인기 그룹이 아니라★한국 대중문화를 그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은 분기점★입니다.1992년 데뷔해 1996년 해체까지 활동 기간은 4년에 불과했지만,지금의 K팝과 팬덤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팀입니다.1985년생인 저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은 말 그대로 우상이었습니다.거리에서는 비니모자를 쓰고 껄렁거리며 걷는 친구들,브레이크 댄스에 취해 복도에서 춤을 추던 친구들.그 시절 기억과 함께, 이 팀을 다시 한..
8090은 같아 보이지만 80년대와 90년대는 사실 전혀 다른 시대였습니다.80년대가 골목길과 동네 공동체의 시대였다면,90년대는 압구정 로데오로 상징되는 개인과 소비문화의 시대였는데요.1985년생인 저는 80년대를 어린 시절의 배경으로,90년대를 또렷한 본 기억으로 통과한 세대입니다.국민학교를 입학했고 졸업은 초등학교였습니다.이렇듯 두 시대를 걸쳐 산 사람의 눈으로,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네 가지 영역으로 비교해 보겠습니다.거리 풍경: 골목길에서 로데오거리로80년대의 중심은 동네 골목이었습니다.동네슈퍼, 이발소, 비디오방, 오락실이 걸어서 5분 거리에 모여 있었고,한복 입은 할머니와 교복 입은 학생이 같은 골목을 걸었습니다.이웃이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아는 공동체의 시대였죠.그 골목에는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