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UTREE.RI · 개인 자료를 다시 쓰는 프로젝트

쌓아 둔 기록을,
다음 일을 위한 자산으로 바꾸는 실험

40대 직장인·육아 아빠가 사진·메모·자료를 세컨드 브레인에 모으고, 그 안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콘텐츠와 디지털 도구 실험으로 확장해 갑니다. 자동화·채널 운영·수익화는 결과를 약속하는 목표가 아니라, 직접 해 보며 배우고 기록하는 과정입니다.

현재 단계: 자료 정리와 세컨드 브레인 구축

01모으기흩어진 자료를 한곳에 모으고 현재 상태를 살핍니다.
02가치 찾기다시 쓸 수 있는 이야기와 지식을 구분합니다.
03콘텐츠화기록을 읽을 만한 글·대본·짧은 콘텐츠로 바꿉니다.
04자동화반복되는 작업을 도구와 코딩으로 어디까지 줄일지 실험합니다.
05확장하기시간·비용·결과를 보고 계속할 채널과 수익 실험을 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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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 8090, 역주행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랐을까?

Grutree 2026. 7. 6. 11:19

목차


    8090은 같아 보이지만 80년대와 90년대는 사실 전혀 다른 시대였습니다.

    80년대가 골목길과 동네 공동체의 시대였다면,
    90년대는 압구정 로데오로 상징되는 개인과 소비문화의 시대였는데요.

    1985년생인 저는 80년대를 어린 시절의 배경으로,
    90년대를 또렷한 본 기억으로 통과한 세대입니다.
    국민학교를 입학했고 졸업은 초등학교였습니다.

    이렇듯 두 시대를 걸쳐 산 사람의 눈으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네 가지 영역으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골목 풍경 참고 사진. 본문 속 1990년대 당시 촬영 사진은 아닙니다.
    골목 풍경 참고 사진. 본문 속 1990년대 당시 촬영 사진은 아닙니다.

    거리 풍경: 골목길에서 로데오거리로

    80년대의 중심은 동네 골목이었습니다.

    동네슈퍼, 이발소, 비디오방, 오락실이 걸어서 5분 거리에 모여 있었고,
    한복 입은 할머니와 교복 입은 학생이 같은 골목을 걸었습니다.
    이웃이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아는 공동체의 시대였죠.

    그 골목에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주소 대신 "슈퍼 옆집", "이발소 지나서 파란 대문"으로 통했습니다.
    택배도 그렇게 왔습니다. 정확히는 택배가 없었고요.

    반면 90년대의 상징은 압구정 로데오와 신촌이었습니다.
    청바지에 워크맨을 걸치고 거리를 걷는 'X세대'가 등장했고,
    놀이의 무대가 동네에서 번화가로 이동했습니다.

    부산에 살던 저에게 그 무대는 서면과 남포동이었습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처음 혼자 버스를 타고 나갔는데,
    그날 아무것도 안 사고 구경만 하다 왔습니다. 그게 놀이였습니다.

    골목의 시대에서 거리의 시대로,
    공동체의 시대에서 개인의 시대로 넘어간 것입니다.

    음악: 다방 DJ에서 서태지로

    80년대 음악은 조용필과 이문세로 대표되는 발라드와 트로트의 시대였습니다.

    음악다방 DJ에게 쪽지로 신청곡을 보내고,
    LP판과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소장하던 시절이었죠.

    집에서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녹음 버튼에 손을 얹고 기다렸습니다.
    DJ가 말을 하다 끊기면 그 곡은 망친 겁니다.
    그렇게 만든 테이프에 볼펜으로 곡명을 적었습니다.

    그러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며 판이 뒤집힙니다.

    랩과 댄스가 주류가 되었고, 1996년 H.O.T. 데뷔로 1세대 아이돌 시대가 열렸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제 교실이 H.O.T.파와 젝스키스파로 갈라져
    매일 논쟁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논쟁이라고 해봐야 "누가 더 잘생겼냐"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꽤 진지했습니다. 편을 갈라 싸우기도 했고요.

    80년대가 어른의 음악이었다면,
    90년대는 처음으로 10대가 문화의 주인공이 된 시대였습니다.

    음악을 녹음해 듣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카세트테이프.
    음악을 녹음해 듣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카세트테이프.

    통신: 집 전화에서 삐삐, 그리고 PC통신으로

    80년대의 연락 수단은 집 전화가 전부였습니다.

    친구 집에 전화하면 부모님이 받아서
    "OO이 좀 바꿔주세요"라고 말해야 했고,
    약속에 늦으면 연락할 방법 자체가 없었죠.

    그래서 약속은 시간과 장소를 아주 정확히 정했습니다.
    "토요일 두 시, 학교 정문." 그게 다입니다.
    안 나오면 그냥 안 나오는 겁니다. 이유는 나중에 듣습니다.

    90년대 들어 삐삐가 등장하며 개인 간 통신이 시작됩니다.

    8282(빨리빨리), 1004(천사) 같은 숫자 암호는 그 시대만의 언어였습니다.
    답을 하려면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고,
    그 앞에는 늘 줄이 있었습니다.

    90년대 후반에는 PC통신이 등장해
    모뎀 접속음과 함께 밤새 채팅을 하고,
    접속하는 동안 집 전화가 불통이라 부모님께 혼나는 것까지가 한 세트였습니다.

    그 접속음을 지금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아마 그 세대는 다 그럴 겁니다.

    지금의 초연결 사회가 바로 이 10년 사이에 싹튼 셈입니다.

    소비문화: 아껴 쓰던 시대에서 자기표현의 시대로

    80년대는 저축이 미덕인 시대였습니다.

    옷은 물려 입고, 물건은 고쳐 쓰는 게 당연했죠.
    양말에 구멍이 나면 꿰매 신었고, 연필은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썼습니다.
    학교에서도 저축 통장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는 오렌지족, X세대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소비가 자기표현이 된 첫 시대였습니다.

    나이키 운동화와 이스트팩 가방이 교실의 계급장이 되었고,
    패스트푸드점과 노래방이 새로운 놀이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계급장은 꽤 노골적이었습니다.
    새 신발을 신고 온 날은 하루 종일 발을 쳐다보는 시선이 따라옵니다.
    저는 국산을 신었고, 그건 그것대로 괜찮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대비가 지금의 뉴트로 열풍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80년대 감성은 정겨움과 공동체로,
    90년대 감성은 힙합과 스트리트 패션으로 각각 다르게 소환되고 있으니까요.

    운동화가 자기표현이 되던 시절을 떠올리는 참고 사진.
    운동화가 자기표현이 되던 시절을 떠올리는 참고 사진.

    두 시대를 모두 살아본 사람의 결론

    80년대는 '우리'의 시대, 90년대는 '나'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대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그리워합니다.
    공동체의 온기도, 처음 맛본 개인의 자유도 지금은 귀해진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제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제일 못 믿는 게 두 가지입니다.
    전화를 걸면 친구 부모님이 받는다는 것,
    그리고 보고 싶은 장면을 다시 볼 수 없었다는 것.

    맞습니다. 우리는 놓치면 끝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요 — 80년대의 골목길, 아니면 90년대의 로데오거리?

    우리의 찬란했고, 아름다웠던 8090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려고 합니다.

    시리즈 이어 읽기

    이 글은 「85년 생입니다」 첫 번째 편입니다. 이 시리즈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다음 편은 그 판을 통째로 뒤집었던 사람 이야기입니다.

    ▶ 다음 편 — 초통령 서태지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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