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생입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3~4주에 한 번씩 찾아갔던 이발소. 그런데 그 주만 되면 왜 그렇게 가기 싫었는지, 이유는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3주마다 돌아오던 6cm의 공포 제가 졸업할 때까지 두발 자유화는 없었습니다. 앞머리는 6cm, 뒷머리는 무조건 스포츠머리로 밀어야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머리는 왜 그렇게 빨리 자라는지, 3~4주만 지나면 귀를 덮고 눈을 찔러서 관리하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습니다.사실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 5주 만에 깎으러 가기 일쑤였습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번 이발소 의자에 앉는 건 엉덩이에 종기가 나는 것마냥 곤욕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복도 족구와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선도부 선생님 우리 시절, 쉬는 시간은 온갖 놀이의 ..
85년 생입니다. 그날 뺏긴 돈은 겨우 몇 푼이었지만 자존심은 아주 바닥까지 털렸습니다.아침에 학교로 가는 길이었습니다.화장실이 달린 놀이터가 있었는데, 그곳에 아는 애가 하나 서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질이 좋지 못하던 아이였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항상 정신이 몽롱하게 지내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가 갑자기 저를 불렀습니다."그루야"그냥 못 들은 척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습니다.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그 뒤를 자꾸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더니 그 옆에 있던 형이 제 뒷목을 잡고 좁은 골목으로 끌고 갔습니다."마! 돌았나, 귀 막힜나." 좁은 골목에서 시작된 30분간의 협박 지나가는 학생들이 드문드문 보이긴 했지만, 그 형은 발로 제 시야를 막아서 밖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85년 생입니다.링 위에서 2시간 만에 깨어났을 때 들은 말은 걱정이 아니었습니다.중학교 입학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복싱부 선배들이 1학년 각 반을 돌며 신입 회원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반을 돌고 돌아서 마침내 우리 반에 도착했을 때, 교실 안은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습니다. 우리 학교 복싱부는 전국 시합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교내 유명 클럽이었습니다.선배들은 체격이 엄청 좋기보다는 다들 호리호리했지만, 우리에게는 그분들의 전설 같은 소문이 온 학교를 떠돌고 있었습니다. 어디 어디에서 10대 1로 싸워 이겼다느니, 잽만 제대로 맞으면 이빨이 빠진다니, 오줌을 지린다느니 하는 무시무시한 별명들이 뒤따랐습니다. 그런 전설의 선배들이 직접 우리 반에 나타났으니 숨소리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
85년 생입니다.1호 초등학교 졸업생이였던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집에서는 20분 정도 걸어가야 했고, 중학교 입구는 30도의 경사로로 되어 있었고, 처음 입학식 입구를 지났을 때, 후,,, 처음 보는 학우분들과 함께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교복과 어깨에 들어간 힘초등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나면 묘하게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현실은 중학교 배정 통지서를 받는 순간 시작되었죠. 해운대중학교 배정을 받고 당시 엘X트, 아X비 그리고 중소 브랜드의 교복이 중학교 앞에 쭉 있었다. 나의 첫 브랜드는 엘X트였다. 내가 봤을 때, 별 차이는 없었다. 중학교 올라가자마자 안 거지만 바지단을 줄이기 쉬운게 제일 좋은 교육이였던 것이다. 교복 리모델링 지금 생각해도 웃..
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내 힘으로 산 프로스펙스 가방과 프로월드컵 신발은 어린 날의 작은 개선문이었습니다.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준비를 위한 자율 적금 통장을 개설했습니다. 학년 전체가 다 가입을 했습니다.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6학년 마칠 때까지 작은 돈일지라도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저축을 하였습니다.이 돈은 엄마 호주머니에서도 나오고, 친인척들 주머니에서도 나왔습니다. 소정의 내 돈을 아끼기 위해 앞선 글처럼 해운대 바닷가를 돌며 빈병을 줍고 동전을 주워 모은 돈이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그 통장의 가치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그리고 나와의 약속이었습니다. 리베라 백화점에서 쥔 세상의 전부 그 통장을 깨고 난 뒤 엄마와 들린 곳은 바로 해운대 리베라 백화점이었습..
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 나는 그날 홈런을 쳤습니다. 하지만 그 홈런보다 더 오래 남은 건, 그 경기로 알게 된 한 친구였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동네를 걸어 다니다 시작된 야구 이야기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탐방이라 쓰고 산책이라 읽는다 6학년이 되자 슬슬 걱정이 생겼습니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가야 하는데, 다른 초등학교 아이들을 통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친구들과 탐방을 가기로 했습니다.말이 탐방이지, 사실 심심해서 온 동네를 걸어 다녔습니다. 축구부가 있던 해운대초등학교부터, 신도시에 새로 생긴 학교, 그리고 지금의 못골(?)까지. 안 가본 데가 없었습니다. 목적지도 없이 그냥 걷고 또 걸었습니다. 나에게는 그게 하나의 놀이였습니다.그러다 우연히 대우 마리나 아파트 쪽까지 ..
85년 생입니다. 그 시절 엄마의 일터는 내겐 놀이터였습니다.새벽이면 우리 아침을 챙겨놓고 옆집 할머니에게 애들 학교 늦지 않게 가는 것만 좀 봐달라고 하고 문을 나서던 엄마였습니다. 호텔 청소부터 유치원 알바까지, 가사만으로는 부족했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엄마는 늘 부지런히 움직이셨습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눈에 엄마의 일터는 그저 따라가서 맛있는 밥을 먹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운이 좋으면 용돈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유치원과 호텔, 엄마의 뒷모습을 따라가던 날들 정말 어렸을 때는 엄마를 따라 엄마가 일하셨던 유치원에 갔었고, 조금 더 자라서는 호텔 청소를 하셨던 엄마를 따라가 호텔에서 밥을 먹고 목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왜 ..
85년 생입니다. 그 시절 저에게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축구하러 가는 곳이었습니다. 10분 쉬는 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종만 치면 저는 조건반사처럼 운동장으로 튀어 나갔습니다. 그 시절 운동장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스트라이커, 가끔은 골키퍼 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습니다. 골을 넣는 자리죠. 그런데 골키퍼 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그라운드의 주인공도 별수 없이 골문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몸이 유연해서 날렵하게 뛰는 게 가능했거든요. 그날 모인 인원에 따라 공격수였다가 골키퍼였다가 했습니다.쉬는 시간은 딱 10분이었습니다. 2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면, 저는 교실 문을 박차고 운동장으로 달렸습니다. 10분 안에 공을 차려면 1초도 아까웠으니까요. 그리고 그 짧은 경기를,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