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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이야기'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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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나는 홈런을 쳤다.

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 나는 그날 홈런을 쳤습니다. 하지만 그 홈런보다 더 오래 남은 건, 그 경기로 알게 된 한 친구였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동네를 걸어 다니다 시작된 야구 이야기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탐방이라 쓰고 산책이라 읽는다 6학년이 되자 슬슬 걱정이 생겼습니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가야 하는데, 다른 초등학교 아이들을 통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친구들과 탐방을 가기로 했습니다.말이 탐방이지, 사실 심심해서 온 동네를 걸어 다녔습니다. 축구부가 있던 해운대초등학교부터, 신도시에 새로 생긴 학교, 그리고 지금의 못골(?)까지. 안 가본 데가 없었습니다. 목적지도 없이 그냥 걷고 또 걸었습니다. 나에게는 그게 하나의 놀이였습니다.그러다 우연히 대우 마리나 아파트 쪽까지 ..

85년 생입니다. 2026. 7. 27. 08:04
[85년 생입니다.] 작전명, “반찬통 뚜껑을 사수하라!”

85년 생입니다. 저는 마지막 도시락 세대입니다. 국민학교로 입학해 초등학교로 졸업한 세대이자, 도시락을 싸 다니다 급식으로 넘어간 세대이기도 합니다. 오늘 소시지를 구우며 문득 떠오른 그 시절 도시락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반찬에도 계급이 있었다그 시절 도시락 반찬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었습니다.최상위 반찬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장조림, 소시지, 계란말이. 이 셋 중 하나를 싸 오는 아이는 그날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흔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반에 마흔다섯 명이 있으면, 이런 반찬을 싸 오는 아이는 네 명쯤 됐을까요.그리고 그 시절에는 재미있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같이 밥을 먹는 무리끼리는 엄마들이 서로 연락해서 반찬을 나눠 싸 오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이 집이 계란말이, 내..

85년 생입니다. 2026. 7. 23. 08:02
[85년 생입니다.] 할머니 시리즈 2, 할매 내 왔다.

85년 생입니다. "엄마 앞에 있나? 어디 갔나?"할머니 집에서 가장 무서운 곳은 화장실이었습니다.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울산의 그 집, 할머니 집은 엄청 작았습니다. 다락방이 달린 단칸방이였고, 거기서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 나 누나, 삼촌들은 옥상에서 지냈습니다.이곳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앞선 이야기는 '할머니 집 가는 기차' 편에서 이어집니다.) 밖에 있던 푸세식 화장실 할머니 집 화장실은 집 안에 없었습니다. 밖에 있었습니다. '푸세식 화장실' 아래가 뻥 뚫린.. 그 다음은 상상에 맡길 수 있는 그곳, 지금 아이들에게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볼일을 보려면 신발을 신고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요.그래서 저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어머니나 아버지를 불..

85년 생입니다. 2026. 7. 16. 08:02
[85년 생입니다.] 나에게 IMF란

85년 생입니다. 온 나라가 무너지던 그때 우리 집은 오히려 형편이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저에게는 오랫동안 이상한 기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중학생이던 제가 겪은 그 시절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 서랍장 맨 밑의 금뭉치 1998년 1월, 텔레비전에서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나라 빚을 갚기 위해 장롱 속 금을 내놓자는 캠페인이었습니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서랍장 맨 아래 칸에는 통장과 함께 금붙이를 모아둔 자리가 있었는데, 그날 어머니는 그것을 통째로 꺼내셨습니다.거기엔 어머니의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야자수가 그려진 사각 펜던트 목걸이였습니다. 어린 눈에도 정말 예뻐서, 저는 지금도 그 모양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85년 생입니다. 2026. 7. 14. 13:02
[85년 생입니다.] 아버지는 검도복을 만드셨지, 야이야이야~♪

85년 생입니다. 제가 그토록 싫어했던 그 냄새가 사실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 냄새였습니다. 아버지가 검도복 만드는 일을 시작하시면서 우리 집의 공기가 바뀌었습니다. 우린 행복했지만, 냄새만큼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서는 늘 퀴퀴한 검도복 냄새가 났고, 손톱에는 남색 물이 들어 있었으니까요. 어린 저는 그 냄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그 시절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오토바이 뒷자리, 해운대에서 문현동까지 건설 붐이 한창이던 시절, 아버지는 사우디와 일본을 오가며 일하셨고 이후 울산 조선소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그러다 가족 중 한 분이 검도복 만드는 일을 하시게 됐고, 아버지는 "가족을 도와야 한다"며 그 일에 뛰어드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85년 생입니다. 2026. 7. 13. 20:07
[85년 생입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의 목소리

85년 생입니다. 카세트테이프에 그토록 마음을 두었던 이유를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그 시작은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이사를 가던 날, 다락방에서 발견한 낡은 테이프 하나였습니다. 그 안에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 우리 가족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예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래된 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해 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울컥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그 안에 담긴 것이 소리가 아니라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막으로 보낸 카세트테이프 1980년대,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을 가셨습니다. 그 시절 중동 건설 현장은 많은 한국 가장들이 가족을 위해 떠나던 곳이었습니다. 국제전화는 너무 ..

85년 생입니다. 2026. 7. 13. 10:30
[85년 생입니다.]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 - 제사

85년 생입니다.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의식이었지만 그 의식을 실제로 떠받친 것은 언제나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요즘 제사 문화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을 보며, 저는 원망보다 안도에 가까운 감정을 느낍니다. 어동육서(고기는 서쪽, 생선은 동쪽), 홍동백서(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상차림의 법도는 그토록 엄격했지만, 정작 그 상을 차리는 규칙은 단순했습니다. 여자는 부엌, 남자는 제삿상 앞. 보수적인 장남의 집에서 일 년에 다섯 번의 제사를 지켜본 아이의 눈으로, 그리고 이제야 어머니의 고생이 보이는 어른의 눈으로, 그 시절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일 년에 다섯 번, 장남 집의 숙명 우리 아버지는 장남이었습니다. 제사를 지내려면 하루 전날 할머니 댁에 미리 가 있어야 했고, 벌초..

85년 생입니다. 2026. 7. 11. 14:47
[85년 생입니다.] 사라진 골목 놀이 이야기

85년 생입니다. "밥 무러 온나!" 구수한 엄마의 목소리가 골목을 울리면, 그게 우리 하루의 마침표였습니다.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건 골목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그 골목을 채우던 '정(情)'이었습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제가 서울 아내를 만나 서울로 이사를 오고,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이 바로 이 변화인데요. 삭막한 골목, 고요한 골목, 이제는 차만 다니는 골목. 골목이 놀이터였고 온 동네가 한 가족 같던 우리 세대 시절과, 학원과 집만 오가는 지금의 세대 아이들의 하루를 나란히 놓고, 세 가지 장면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친구들 집이 다 있었다. 제가 자란 부산의 골목은 길이 아니라 하나의 기지와 같았습니다. 시골도 아니었는데 그 시절엔 아이들이 골목마다 바글바..

85년 생입니다. 2026. 7. 11. 14:41
[85년 생입니다.] 육성회비의 기억

85년 생입니다. 우리 시절 국민학교는 무상교육이었다고는 하나 사실 아니었습니다. 매달 학교에 내야 하는 돈이 있었고, 그 돈은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습니다. 1985년생인 저에게 그 선은 육성회비 봉투와 우유 급식이었습니다. 웃으며 쓰던 오락실과 문방구 이야기와 달리, 오늘은 조금 담담하게 그 시절 교실의 뒷면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매달 돌아오던 봉투: 육성회비라는 숙제 "엄마! 선생님이 육성회비 가져오래요~"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육성회비', 정식 명칭이 육성회비인지 월사금인지는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고, 아이였던 저에게는 그냥 '매달 학교에 내야 하는 돈'이었습니다. 국민학교는 분명 의무교육이라 수업료가 없었는데, 학교 운영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학부모에게 걷는 육성회비가 사..

85년 생입니다. 2026. 7. 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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