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UTREE.RI · 개인 자료를 다시 쓰는 프로젝트
쌓아 둔 기록을,
다음 일을 위한 자산으로 바꾸는 실험
40대 직장인·육아 아빠가 사진·메모·자료를 세컨드 브레인에 모으고, 그 안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콘텐츠와 디지털 도구 실험으로 확장해 갑니다. 자동화·채널 운영·수익화는 결과를 약속하는 목표가 아니라, 직접 해 보며 배우고 기록하는 과정입니다.
현재 단계: 자료 정리와 세컨드 브레인 구축
85년 생입니다. 남중에 여자 교생 선생님이 오신다는 건 온 학교가 뒤집어지는 대사건이었습니다.중학교에 올라오고 나서야 대학생들이 교생 실습을 온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 것조차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반에 국어 교생 선생님이 배치되면서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미라클이었습니다. 우리 반에 온 분은 다름 아닌 여자 선생님이었습니다.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온 질문들 저는 TV에서 학생들이 교생 선생님에게 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닥치니 입에서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남자친구는 있는지, 평소에 뭘 좋아하시는지. 국어 말고 오늘은 딴 걸 가르쳐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짓궂은 장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묵묵히 지켜보고 계셨..
85년 생입니다. 저는 그날 고추튀김 하나 때문에 친구들과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습니다. 중학교 시절, 동네 분식집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남이 나보다 많이 먹는 꼴을 못 보던 시절 중학교 때는 한창 성장기라 먹는 것에 유난히 예민했습니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도 식탐이 어찌나 많았는지, 남이 나보다 많이 먹는 꼴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밖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그날은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오전에 축구를 하고, 학교 앞에서 컵라면을 하나 때리고, 농구까지 한 게임 뛰었습니다. 다들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어김없이 그리로 향했습니다.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친구 부모님이 하시던 분식집이었습니다.튀김, 순대, 떡볶이 왕창 그 집에서 제일 맛있는 ..
85년 생입니다. IMF는 우리 집을 비껴갔을지 몰라도 제 친구 민재의 삶은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아버지가 조선소에 계셨던 우리 집은 그 시기를 그럭저럭 넘겼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오면 공기가 달랐습니다. 친구들의 아버지들이 하나둘 일자리를 잃었고, 몇몇은 김해나 마산, 울산, 해외로 나가 일하신다는 들었다.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 제 친구 민재가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어느 날부터 비어 있던 자리 민재가 학교에 나오지 않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처음엔 며칠 결석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그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별다른 말이 없었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흉흉한 소문만 돌았습니다.걱정되는 마음에 방과 후 민재네 집을 찾아갔습니다...
85년 생입니다. 그날은 시작은 찬란했지만 끝은 완전히 구렸습니다. 지난 편에서 1승 1패로 팽팽했던 희완이와의 3연전, 그 마지막 승부와 그날의 결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3세트, 다크 아콘의 역습 3세트, 저는 프로토스, 희완이는 테란. 초반에는 따로 침투가 없었습니다. 중반이 되고 잠깐의 교전은 있었으나, 우리는 지루한 게임을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미네랄, 가스 부족으로 인해 확장 기지를 건설하면서 우리는 충돌했습니다. 사실 저는 밀리고 있었습니다. 확장 기지가 많이 없었거든요. 프로토스에게는 치명타죠. 그래서 저는 캐리어로 마무리하려고 했고, 거기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희완이도 배틀크루저에 야마토 포까지 쓸 수 있게 업그레이드를 마친 상태라 상당히 고전하고 있었습니다.그러다 생..
85년 생입니다. 그날 저는 뻥친 게 하나 있었습니다. 배가 아파서 학원에 못 가겠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그 거짓말 끝에 도착한 곳은 해운대의 어느 피시방이었습니다. 그날 벌어진 3연전의 시작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한 시간에 천 원, 해운대 피시방 그 시절 피시방은 한 시간에 천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피시방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어서, 당구장처럼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몇 달 뒤에야 금연으로 바뀌긴 했지만요. 배 아프다는 뻥, 그리고 라이벌 그날 저는 학원에 배가 아프다고 뻥을 쳤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 희완이와 함께 피시방으로 향했습니다. 제 주종족은 프로토스였습니다. 특기는 빠른 확장 후 초반 러시. 희완이는 늘 테란으로 마린과 파이어뱃, 메딕만 뽑았습니다. 초반..
85년 생입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3~4주에 한 번씩 찾아갔던 이발소. 그런데 그 주만 되면 왜 그렇게 가기 싫었는지, 이유는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3주마다 돌아오던 6cm의 공포 제가 졸업할 때까지 두발 자유화는 없었습니다. 앞머리는 6cm, 뒷머리는 무조건 스포츠머리로 밀어야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머리는 왜 그렇게 빨리 자라는지, 3~4주만 지나면 귀를 덮고 눈을 찔러서 관리하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습니다.사실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 5주 만에 깎으러 가기 일쑤였습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번 이발소 의자에 앉는 건 엉덩이에 종기가 나는 것마냥 곤욕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복도 족구와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선도부 선생님 우리 시절, 쉬는 시간은 온갖 놀이의 ..
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 나는 그날 홈런을 쳤습니다. 하지만 그 홈런보다 더 오래 남은 건, 그 경기로 알게 된 한 친구였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동네를 걸어 다니다 시작된 야구 이야기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탐방이라 쓰고 산책이라 읽는다 6학년이 되자 슬슬 걱정이 생겼습니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가야 하는데, 다른 초등학교 아이들을 통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친구들과 탐방을 가기로 했습니다.말이 탐방이지, 사실 심심해서 온 동네를 걸어 다녔습니다. 축구부가 있던 해운대초등학교부터, 신도시에 새로 생긴 학교, 그리고 지금의 못골(?)까지. 안 가본 데가 없었습니다. 목적지도 없이 그냥 걷고 또 걸었습니다. 나에게는 그게 하나의 놀이였습니다.그러다 우연히 대우 마리나 아파트 쪽까지 ..
85년 생입니다. 저는 마지막 도시락 세대입니다. 국민학교로 입학해 초등학교로 졸업한 세대이자, 도시락을 싸 다니다 급식으로 넘어간 세대이기도 합니다. 오늘 소시지를 구우며 문득 떠오른 그 시절 도시락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반찬에도 계급이 있었다그 시절 도시락 반찬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었습니다.최상위 반찬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장조림, 소시지, 계란말이. 이 셋 중 하나를 싸 오는 아이는 그날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흔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반에 마흔다섯 명이 있으면, 이런 반찬을 싸 오는 아이는 네 명쯤 됐을까요.그리고 그 시절에는 재미있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같이 밥을 먹는 무리끼리는 엄마들이 서로 연락해서 반찬을 나눠 싸 오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이 집이 계란말이, 내..
85년 생입니다. "엄마 앞에 있나? 어디 갔나?"할머니 집에서 가장 무서운 곳은 화장실이었습니다.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울산의 그 집, 할머니 집은 엄청 작았습니다. 다락방이 달린 단칸방이였고, 거기서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 나 누나, 삼촌들은 옥상에서 지냈습니다.이곳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앞선 이야기는 '할머니 집 가는 기차' 편에서 이어집니다.) 밖에 있던 푸세식 화장실 할머니 집 화장실은 집 안에 없었습니다. 밖에 있었습니다. '푸세식 화장실' 아래가 뻥 뚫린.. 그 다음은 상상에 맡길 수 있는 그곳, 지금 아이들에게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볼일을 보려면 신발을 신고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요.그래서 저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어머니나 아버지를 불..
85년 생입니다. 온 나라가 무너지던 그때 우리 집은 오히려 형편이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저에게는 오랫동안 이상한 기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중학생이던 제가 겪은 그 시절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 서랍장 맨 밑의 금뭉치 1998년 1월, 텔레비전에서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나라 빚을 갚기 위해 장롱 속 금을 내놓자는 캠페인이었습니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서랍장 맨 아래 칸에는 통장과 함께 금붙이를 모아둔 자리가 있었는데, 그날 어머니는 그것을 통째로 꺼내셨습니다.거기엔 어머니의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야자수가 그려진 사각 펜던트 목걸이였습니다. 어린 눈에도 정말 예뻐서, 저는 지금도 그 모양을 또렷이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