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UTREE.RI · 개인 자료를 다시 쓰는 프로젝트
쌓아 둔 기록을,
다음 일을 위한 자산으로 바꾸는 실험
40대 직장인·육아 아빠가 사진·메모·자료를 세컨드 브레인에 모으고, 그 안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콘텐츠와 디지털 도구 실험으로 확장해 갑니다. 자동화·채널 운영·수익화는 결과를 약속하는 목표가 아니라, 직접 해 보며 배우고 기록하는 과정입니다.
현재 단계: 자료 정리와 세컨드 브레인 구축
제가 그토록 싫어했던 그 냄새가사실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 냄새였습니다.아버지가 검도복 만드는 일을 시작하시면서 우리 집의 공기가 바뀌었습니다.우린 행복했지만, 냄새만큼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아버지에게서는 늘 퀴퀴한 검도복 냄새가 났고,손톱에는 남색 물이 들어 있었으니까요.어린 저는 그 냄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오토바이 뒷자리, 해운대에서 문현동까지건설 붐이 한창이던 시절, 아버지는 사우디와 일본을 오가며 일하셨고 이후 울산 조선소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그러다 가족 중 한 분이 검도복 만드는 일을 하시게 됐고, 아버지는 "가족을 도와야 한다"며 그 일에 뛰어드셨습니다.그렇게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옮겨왔습니다.그때부터 아버지의 하루는 오토바이로 시작됐습니다.해운대에서 문현동까지, 매일 그..
카세트테이프에 그토록 마음을 두었던 이유를,저는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그 시작은 노래가 아니었습니다.이사를 가던 날, 다락방에서 발견한 낡은 테이프 하나였습니다.그 안에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 우리 가족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습니다.예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래된 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해 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그때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울컥하는지 잘 몰랐습니다.이제는 압니다. 그 안에 담긴 것이 소리가 아니라 시간이기 때문입니다.사막으로 보낸 카세트테이프1980년대,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을 가셨습니다.그 시절 중동 건설 현장은 많은 한국 가장들이 가족을 위해 떠나던 곳이었습니다.국제전화는 너무 비쌌고, 편지는 너무 느렸습니다.그래서 어머니가 선택한 방법이카세트테이프를 편지와..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의식이었지만 그 의식을 실제로 떠받친 것은 언제나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요즘 제사 문화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을 보며, 저는 원망보다 안도에 가까운 감정을 느낍니다.어동육서(고기는 서쪽, 생선은 동쪽),홍동백서(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상차림의 법도는 그토록 엄격했지만, 정작 그 상을 차리는 규칙은 단순했습니다.여자는 부엌, 남자는 제삿상 앞.보수적인 장남의 집에서 일 년에 다섯 번의 제사를 지켜본 아이의 눈으로, 그리고 이제야 어머니의 고생이 보이는 어른의 눈으로,그 시절 이야기를 적어 보겠습니다.일 년에 다섯 번, 장남 집의 숙명우리 아버지는 장남이었습니다.제사를 지내려면 하루 전날 할머니 댁에 미리 가 있어야 했고, 벌초부터 시작해 제사를 마친 뒤에는 온 동네를 돌며..
"밥 무러 온나!"구수한 엄마의 목소리가 골목을 울리면, 그게 우리 하루의 마침표였습니다.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건 골목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그 골목을 채우던 '정(情)'이었습니다.부산에서 나고 자란 제가 서울 사는 아내를 만나 서울로 이사를 오고,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이 바로 이 변화입니다.삭막한 골목, 고요한 골목, 이제는 차만 다니는 골목.골목이 놀이터였고 온 동네가 한 가족 같던 우리 세대의 시절과, 학원과 집만 오가는 지금 아이들의 하루를 나란히 놓고 이야기해 보겠습니다.골목길에 들어서면, 친구들 집이 다 있었다제가 자란 부산의 골목은 길이 아니라 하나의 기지 같았습니다.시골도 아니었는데 그 시절엔 아이들이 골목마다 바글바글했습니다.골목에 들어서면 친구들 집이 죄다 거기 있었..
국민학교 다닐 때는 매달 학교에 내는 흰 봉투가 있었습니다.육성회비 봉투였습니다.봉투 하나, 우유팩 하나.그 작은 것들에도 교실의 앞면과 뒷면이 있었습니다.매달 돌아오던 봉투: 육성회비라는 숙제"엄마, 선생님이 육성회비 가져오래요."한 달에 한 번씩 흰 봉투를 받아 왔습니다.봉투에는 학년, 반, 이름을 쓰는 칸이 있었고 그 안에 돈을 넣어 선생님께 내면 됐습니다.그런데 우리 집은 늦게 내는 달이 있었습니다.그날 저녁이면 방문 너머로 엄마 아빠의 전화 소리가 들렸습니다.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였습니다.무슨 말인지는 다 알아듣지 못했습니다.그래도 그날은 괜히 먼저 자는 척했습니다.다음 날 학교에 가면 봉투가 든 책가방이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선생님이 아직 안 낸 사람을 찾을까 봐, 친구들이 알까 봐 괜히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