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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에게 제일 맛있는 양념통닭은 엄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어주신 국민학교 때 그 양념통닭입니다. 어느 날 새벽, 외삼촌이 냉동 닭 한 박스를 들고 오면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새벽에 도착한 냉동 닭 한 박스
어느 날 새벽, 막내 외삼촌이 오셨습니다. 부산항에서 일하시던 외삼촌이었습니다.
"누나, 문 열어봐라."
"이게 뭐고."
"다른 건 아니고, 갑자기 냉동 닭이 몇 박스 생겨서 같이 먹을라고 들고 왔다. 내 다시 간데이."
열어보니 냉동된 닭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먹어도 되는 거니 걱정 마시라는 말만 남기고 외삼촌은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는 그 많은 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었습니다. 그 당시 냉장고가 큰 것도 아니었고, 주방이 좁았고, 하필이면 여름이라 상하기 전에 빠른 처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냉장고를 가득 채워 넣고, 나머지 꽝꽝 언 닭은 시장에서 보던 얼음 동태처럼 대야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녹으면 바로바로 손질을 해야 했습니다.
엄마는 고민이었습니다. "뭘 해야 될까?" 기름이 싸지 않아서 튀김 요리를 해 먹기도 애매했습니다. 새벽에 찾아온 닭 한 박스가, 온 가족의 며칠 식사를 통째로 바꿔놓았습니다.
순살의 원조, 우리 집 주방
그래서 우리는 닭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먹었습니다.
처음엔 찜닭을 해 먹었습니다. 그런데 뼈 바르는 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니어서, 작은 칼로 살만 도려냈습니다. 지금의 순살처럼 말입니다. 순살 치킨이 나오기 한참 전에, 우리 집 주방에서 이미 순살을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뼈에 살을 반이나 붙인 채로 버리려다가, 엄마 아빠의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깨끗하게 발골했습니다.
그 살들은 닭꼬치가 되고 닭볶음탕이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닭이 있었고, 밥상에는 매일 닭이 올라왔습니다.
"와, 얼마나 남았노."
"닭만 먹다가 닭대가리 되겠다."
양념통닭, 두 번 죽어도 모를 맛
이 모든 것의 하이라이트는 양념통닭이었습니다. 이건 지금도 잊지 못하는 맛입니다.
과정은 이랬습니다. 닭을 손질해 소금물에 담가 염지(간이 배도록 소금물에 재워두는 과정)를 합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고, 케첩·설탕·고추장에 이것저것 넣어 양념을 만듭니다. 드디어 D-day, 튀기는 날입니다.
"찌글찌글찌글."
닭이 튀겨지는 이 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튀긴 닭을 양념과 함께 섞고, 마지막으로 참깨와 땅콩 부스러기를 올리면 끝입니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두 번 죽어도 모를 맛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건 처음이자 마지막 양념통닭이었습니다. 이걸 다 하고 나서 엄마가 드러누우셨거든요. 너무 힘드셔서 말입니다. 그 며칠의 노동이 어떤 것이었는지, 아이였던 저는 맛에 취해 몰랐습니다. 그 맛이 그렇게 좋았던 건, 어쩌면 엄마가 며칠을 갈아 넣은 맛이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저녁에 양념치킨을 시켜 먹으려 합니다. 전화 한 통이면 오는 시대에 살면서, 그 새벽의 냉동 박스를 가끔 떠올립니다.
여러분의 집에도 이런 '한 번 뿐이었던 음식'이 있었습니까? 어머니가 며칠을 고생해서 만들어주신 그 맛, 하나만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 글은 개인의 기억에 기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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