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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저는 마지막 도시락 세대입니다. 국민학교로 입학해 초등학교로 졸업한 세대이자, 도시락을 싸 다니다 급식으로 넘어간 세대이기도 합니다. 오늘 소시지를 구우며 문득 떠오른 그 시절 도시락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반찬에도 계급이 있었다
그 시절 도시락 반찬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었습니다.
최상위 반찬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장조림, 소시지, 계란말이. 이 셋 중 하나를 싸 오는 아이는 그날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흔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반에 마흔다섯 명이 있으면, 이런 반찬을 싸 오는 아이는 네 명쯤 됐을까요.
그리고 그 시절에는 재미있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같이 밥을 먹는 무리끼리는 엄마들이 서로 연락해서 반찬을 나눠 싸 오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이 집이 계란말이, 내일은 저 집이 소시지, 이런 식으로요. 다만 저는 그 무리에 끼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으니까요. 제 도시락 반찬은 늘 정해져 있었습니다. 김치, 그리고 멸치. 기분 좋은 날은 어묵 볶음이 올라왔습니다.
분홍 소시지, 반찬계의 헤르메스
그런 저에게도 아주 가끔, 특별한 날이 있었습니다. 바로 소시지를 싸 가는 날입니다. 거기에 계란 프라이까지 올라간다면 금상첨화이죠.
계란 옷을 입혀 노릇하게 부친 그 분홍 소시지는, 제게 반찬계의 헤르메스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날은 아침부터 마음이 설렜습니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점심시간이 되면 저는 비상 태세에 들어갔습니다. 소시지는 늘 표적이 됐거든요.
“하나만!” "니도 내 거 뭇 다이가, " 하고 달려드는 친구들로부터 저는 반찬통 뚜껑을 사수하기 바빴습니다. 뚜껑으로 반쯤 가린 채, 젓가락을 방어막처럼 세우고 먹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주먹다짐이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소시지를 둘러싼 몸싸움은 특별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귀했으니까요.
오늘, 소시지를 구우며
세월이 흘러 저는 아빠가 됐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이들 반찬으로 비엔나소시지를 굽다가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내 어릴 때 이건 반찬계의 헤르메스였는데.” 아내에게 그렇게 말하며 웃었습니다.
지금 우리 집 식탁에는 다 있습니다. 소시지도, 장조림도, 어묵볶음도. 제가 그토록 부러워하던 그 반찬들이 지금은 흔하디 흔한 반찬이 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아이는 편식이 심해 반찬 하나에만 젓가락이 갑니다. 잔반이 수북한 아이 밥그릇을 보며 저는 이런 말이 목까지 차오릅니다. “참 좋을 때다.” 소시지 하나에 주먹다짐까지 하던 아이는, 이제 소시지를 남기는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풍요로워졌는데, 어쩐지 그 시절 소시지의 맛이 더 진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도시락 최고의 반찬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반찬통 뚜껑을 사수해 본 분, 저 말고 또 계신가요? 댓글로 그 시절 도시락을 들려주세요.
참고 자료
나무위키 ‘한국 급식(전면급식 도입 시기)’: https://namu.wiki/w/한국%20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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