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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목욕탕은 아버지와 저 둘만의 시간이었습니다. 매주 일요일 오후 세 시,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집 앞에도 목욕탕이 있었지만 우리는 해운대 온천만 고집했습니다. 해운대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던 곳입니다. 어머니는 "물 더러운데 왜 새벽에 안 가노" 하고 잔소리를 하셨지만, 우리 부자에게는 별 타격이 없었습니다. 여름이면 물놀이하러 가던 그 길을, 일요일 오후에는 목욕 가방을 들고 걸어 내려갔습니다.
해운대 온천, 바닷가 가는 길에 있던 목욕탕
탕은 세 개였습니다. 온탕, 냉탕, 그리고 이름 모를 한약재가 들어간 탕.
저는 탕에 들어가는 게 제일 싫었습니다. 발을 담그면 다리가 저려오는 찌릿한 느낌, 숨이 턱 막혀버릴 것 같은 그 느낌이 싫어서 아예 안 들어가려고 버텼습니다. 그런 저를 보시고 아버지는 벌써 목까지 담근 채 눈을 감고 이러셨습니다.
"시원하다. 빨 안 들어오고 뭐 하노."
그래도 안 들어가면 최후의 수단이 나왔습니다.
"여기 안 들어오면 사이다 없다이~"
"치사하게 그러지 마라." 투덜대면서도 저는 결국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턱만 물 위에 올려놓고 버텼습니다.
때수건, 그리고 팔에 남은 빨간 점
탕에서 나오면 때수건 차례였습니다.
"이탤 타올 들고 왔나?"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이탤 타올'이 이태리타올의 줄임말이라는 것을요. 그런데 이름과 달리 이탈리아 물건이 아닙니다. 수입한 원단이 옷으로 쓰기엔 너무 거칠어서 때 미는 데 돌린 것이 시작이었고, 그걸 만든 곳이 부산의 직물공장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밀어주실 때는 아프다는 말을 못 했습니다. 힘이 세서 몸이 앞으로 밀렸습니다. 제일 아픈 곳은 팔이었습니다. 다 밀고 나면 팔에 빨간 점들이 구석구석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은 제 차례였습니다. 아버지가 등을 돌리고 앉으면 저는 때수건을 손에 끼고 밀었습니다. 등이 넓었습니다. 팔이 짧아서 어깨까지 닿지 않았습니다.
리베라 백화점 옆, 소고기국밥집
목욕탕을 나오면 몸에서 김이 났습니다. 아버지는 약속대로 사이다를 사주셨습니다. 어떤 날은 바나나우유였고, 어떤 날은 요구르트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리베라 백화점 옆, 31번 버스 종점 앞에 있던 허름한 소고기국밥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국밥에 소주 한 병을 함께 시키셨습니다. 목욕을 마친 일요일 오후, 뜨끈한 국밥 한 그릇과 소주 한 잔. 그게 아버지의 일주일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저는 그저 국밥이 나오기를 기다렸을 뿐입니다.
국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는 목욕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아버지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그때 아버지 손은 정말 컸습니다. 제 손이 그 안에 다 들어갔으니까요.
그렇게 매주 일요일을 함께 걷던 우리는,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목욕탕에 가지 않게 됐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그리고 몇 달 전, 오랜만에 아버지와 목욕탕에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탕에서 나와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리려는데, 저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깨가 그렇게 좁으실 줄 몰랐습니다.
제 팔이 닿지 않던 그 넓은 등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제 손은 아버지의 어깨 끝까지 닿고도 남았습니다. 그 크던 손도 어느새 작아져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 팔이 길어진 것인지, 아버지가 작아지신 것인지. 아마 둘 다일 겁니다. 그 사이 30년이 지났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보셨나요? 마지막으로 아버지 등을 밀어드린 게 언제인가요? 댓글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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