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85년 생입니다.
"엄마 앞에 있나? 어디 갔나?"
할머니 집에서 가장 무서운 곳은 화장실이었습니다.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울산의 그 집, 할머니 집은 엄청 작았습니다. 다락방이 달린 단칸방이였고, 거기서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 나 누나, 삼촌들은 옥상에서 지냈습니다.
이곳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앞선 이야기는 '할머니 집 가는 기차' 편에서 이어집니다.)
밖에 있던 푸세식 화장실
할머니 집 화장실은 집 안에 없었습니다. 밖에 있었습니다. '푸세식 화장실' 아래가 뻥 뚫린.. 그 다음은 상상에 맡길 수 있는 그곳, 지금 아이들에게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볼일을 보려면 신발을 신고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어머니나 아버지를 불러 함께 갔습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무서워한 것은 흔히들 말하는 '빠질까 봐'가 아니었습니다. 저의 진짜 공포는 바퀴벌레였습니다. 그 어둡고 좁은 공간 어딘가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그 느낌. 그게 어린 저를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소리를 지른 적이 한두번 아니니깐요. 무서운 화장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오면, 기다리던 보상이 있었습니다. 바로 Misson Clear와 함께 몰려오는 꿀맛같은 밤잠.
그리고 그 시절에는 똥 퍼는 아저씨가 오셨습니다. 아저씨가 다녀가고 나면 냄새가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의 후련함이란. 냄새도 비우고 마음도 비워주시던, 그야말로 최고의 분이셨습니다.
할머니의 첫째, 그리고 단술
솔직히 말하면, 할머니가 제일 예뻐한 손주는 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누나였습니다. 집안의 첫째였습니다.
할머니는 어디를 가시든 누나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심지어 회사까지요. 할머니는 현대중공업 급식소에서 일하셨는데, 그 일터에도 누나를 데려가셨습니다. 그 당시 현대 미포 조선, 현대 중공업, 현대 자동차 빵빵한 직장이 많아서 그런지 방어진 시장은 사람들도 가게들도 즐비했습니다. 할머니집에 갈때 제일 기대 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시장에 가는 길이면 늘 뭔가를 사주셨습니다. 저에게는 로봇 하나. 누나에게는 인형과 신발과 먹을거리.
어린 저도 그 차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크게 서운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누나가 워낙 애교가 많았고, 저도 그런 누나가 좋았으니까요. 그리고 그 시절 집안의 첫째라는 자리에는 그런 무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좋았던 건 요즘 말로는 식혜, 그때 우리는 단술이라고 불렀습니다.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몇 시간을 달려온 끝에 마시는 그 시원하고 달큰한 한 잔. 그게 그 긴 여정의 진짜 보상이었습니다. 로봇 하나뿐이어도, 그 단술 한 잔이면 충분했습니다.
목줄을 채우지 않은 똥개
할머니 집에는 똥개 한 마리가 드나들었습니다. 정확히는 우리 개가 아니었습니다. 동네를 떠돌다 놀러 오는 개였습니다.
저는 그 개가 좋아 저녁까지 밥을 챙겨줬습니다. 목줄은 아플까봐 채우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게 진짜 배려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아시겠지요. 그 개는 도망갔습니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도망간 게 아니라 그냥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이겠지요. 애초에 제 개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서운했습니다. 밥까지 줬는데 왜 가버렸을까. 아마 그게 제 인생에서 처음 겪은 이별이었을 겁니다.
여러분의 할머니 집은 어떤 곳이었나요? 밖에 있던 화장실, 마당의 개, 그 집에서만 나던 맛.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댓글로 들려주세요.
'85년 생입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85년 생입니다.] 공지사항 (7월 17일 휴식 공지) (0) | 2026.07.17 |
|---|---|
| [85년 생입니다.] 옥상 돗자리 위에서 나눴던 소소한 꿈과 이야기들 (0) | 2026.07.16 |
| [85년 생입니다.] 아버지와의 추억 1 - 목욕탕 (3) | 2026.07.15 |
| [85년 생입니다.] 할머니 시리즈 1, 할매집 가는길 (0) | 2026.07.15 |
| [85년 생입니다.] 나에게 IMF란 (0) | 2026.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