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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부산행 SRT가 출발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때 그 기차는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해운대에서 울산까지, 창문을 열고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지를 수 있었던 그 기차 말입니다.
그 시절 무슨 이유에서인지 할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으셨고, 할머니가 울산 현대중공업 급식소에서 일하셨습니다. 그 할아버지 댁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그 여정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선로를 가로질러 가던 해운대역
지금의 해운대역은 신시가지 구석에 있지만, 그 시절 해운대역은 바닷가가 보이는 아주 까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사방이 뻥 뚫려 있어서 동네 사람들은 선로를 가로질러 다니는 게 예사였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열차 시간에 늦기라도 하면, 자랑은 아니지만 쥐구멍을 통해 선로 위를 달려 승차장까지 뛰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지만, 그때는 그게 그냥 지름길이었습니다.
이 역은 1934년에 문을 열었고, 팔각지붕 역사는 1987년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공사로 선로가 이설되면서 그 역은 문을 닫았습니다. 몇 달 전에 그 근처를 지나갔는데, 우리가 드나들던 그 개구멍 자리에는 고속버스 정류장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계란과 사이다, 그리고 방귀 살인마
기차에 오르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간식 타임입니다. 출발하고 몇 분이 지나면 승무원이 이동식 카트를 끌고 지나갑니다. 카트에는 온갖 먹을거리가 실려 있었지만, 제가 늘 고르는 건 정해져 있었습니다. 삶은 계란과 사이다. 이건 정말입니다. 기차에서 계란과 사이다를 먹지 않으면 그건 기차를 탄 게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계란을 먹고 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밀폐된 객차 안에서 방귀를 뀌는 순간, 그 사람은 살인마가 됩니다. 온 승객의 눈총이 한 사람에게 쏟아지던 그 순간의 공포를, 기차를 타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당당했습니다. 어렸으니까요.
그리고 그 시절 기차에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칸과 칸 사이가 뻥 뚫려 있어서 발밑으로 선로가 다 보였습니다. 그 틈으로 자갈이 스쳐 지나가는 걸 내려다보고 있으면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어른들도 간혹 계셨습니다.
해운대에서 송정으로, 창문을 열고
여정의 초반이라 하이라이트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해운대에서 송정으로 넘어가는 구간입니다. 철길이 바다에 바짝 붙어 있어서, 창밖으로 햇살에 부서지는 바다가 그대로 펼쳐졌습니다. 그때는 창문을 열 수 있는 기차였습니다. 그래서 그 구간에 들어서면 창문을 활짝 열고 바다를 향해 소리를 한번 질러주는 겁니다. 그게 그 시절 우리의 의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그랬듯 기차는 무사히 울산역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한 시간 정도를 더 가야 했으니까요. 그 버스 창밖으로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지나갔습니다. 어린 저에게는 그 거대한 공장들이 온통 새롭고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종점, 할머니 집이 가까워지면 비로소 미션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그 바닷길 철도는 2013년 12월에 폐선됐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는 관광열차가 다닌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타보고 싶었지만 아직 타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훨씬 예쁘고 편할 겁니다. 다만 창문을 열고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지를 수는 없겠지요.
여러분의 기차 여행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삶은 계란과 사이다, 아니면 다른 무언가? 그리고 창문을 열 수 있는 기차를 타보신 분, 저 말고 또 계신가요? 댓글로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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