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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 나에게 일탈이란,

Grutree 2026. 7. 14. 08:20

목차


    85년 생입니다.

     

    저의 첫 일탈은 술도 담배도 아닌 '금 캐기'였습니다. 요즘 세대가 말하는 거창한 일탈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저 늘 놀던 골목을 벗어나, 걸어서 한 시간 거리까지 나가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겐 세상 끝까지 가보는 모험이었습니다. 그 모험의 세계로 저를 이끈 건 최현석이라는 친구였습니다. 그 시절 우리의 일탈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취미가 '돈'이었던 친구, 최현석

     

    우리 반에는 최현석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박학다식한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이의 취미는 '돈'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의 취미가 돈이라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저에게 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알려준 사람이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
    우리의 첫 사업은 빈병 줍기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최고의 장소가 있었습니다. 바로 해운대 바닷가입니다. 그곳은 그야말로 노다지였습니다. 특히 최고의 명당은 따로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때는 바캉스족들이 텐트를 칠 수 있는 산책로 같은 공간이 있었거든요. 그곳에 가면 무조건 천 원은 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주운 병을 가게에 가져가면 돈으로 바꿔주었고, 우리는 그 돈으로 맛있는 것을 사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린 저에게 그건 충격적인 발견이었습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병이 돈이 되고, 그 돈이 다시 먹을 것이 된다는 사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세상에는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는 방법이 있다는 걸, 저는 그 친구에게서 배웠습니다.
    우리의 두 번째 사업은 동전 줍기였습니다. 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백사장으로 향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래사장에 앉았다 일어나면서 흘리고 간 동전들을 찾아다니는 겁니다. 여름에는 빈병, 겨울에는 모래밭 계단 밑. 특히 계단 밑은 무조건 500원은 확보되는 우리만의 성지였습니다. 그날의 컨디션과 계절에 따라 종목을 정하고, 우리는 해운대를 훑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사 먹던 군것질거리의 맛이란. 배고픔이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은 아마 이럴 때 쓰는 말일 겁니다.

     

    스포이드와 접시를 든 금 캐기 탐사대

     

    빈병 줍기가 시시해질 무렵, 최현석은 더 큰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금 캐기였습니다. 그 친구는 방과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스포이드와 긴 접시를 챙겨 들고 나섰습니다. 도대체 그런 걸 어디서 구해오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물어봐도 대답은 늘 똑같았습니다. "그냥 주웠다."
    우리의 금광은 도처에 있었습니다. 장산에도 갔고, 학교 뒷산도 뒤졌고, 신동아 아파트 뒤편 공터도 훑었습니다. 흙을 접시에 담고 물을 부어 살살 흔들면 반짝이는 것들이 남았습니다. 물론 진짜 금을 캔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비슷한 것들은 꽤 많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대목이 지금도 웃깁니다. 우리는 그렇게 찾아낸 것들을 보며 "이 크기로 뭐가 돈이 되겠니" 하면서 도로 버렸습니다. 캔 것보다 버린 것이 훨씬 많았을 겁니다. 그때는 그저 새로운 놀이로 하루가 재미있게 흘러간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부자가 될 기회를 제 손으로 직접 흙에 던져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란 가재와 저녁 8시의 귀가

     

    또 하나의 일탈은 가재 잡기였습니다. 그 시절 우리 학교 뒷산에는 계곡물이 정말 맑았습니다. 얼마나 깨끗했는지, 물속에서 파란색 가재를 잡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가재만이 아니었습니다. 산에 토끼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으니,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만화 같은 이야기일 겁니다.
    그런데 왜 이걸 일탈이라고 부르냐고요? 늘 집 앞 골목에서만 놀던 우리가,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한 시간 거리까지 나갔기 때문입니다. 지도도 없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 그 한 시간은 세상의 끝처럼 멀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우리의 일탈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겁이 많았습니다. 아무리 멀리 나가도 저는 저녁 8시 이전에는 반드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반항의 최대치였습니다. 세상 끝까지 갔다가도 8시 전에는 얌전히 밥상 앞에 앉는 것. 그게 그 시절 저의 일탈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첫 일탈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혹시 어린 시절 금을 캐러 다녀본 분, 저 말고 또 계신가요? 댓글로 그 시절 모험을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