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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덥다. 수박 하나 무 바라. 더위 싹 간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시절엔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선풍기도 비싸서 방에 한 대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름이 지금보다 견딜 만했습니다. 아니, 견딘 게 아니라 즐거웠습니다.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안주 삼아 수박화채를 먹던 그 여름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백 집에 여섯 집, 에어컨 없던 여름
2025년 서울의 열대야 일수는 46일이었습니다. 1908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기록이고, 평년(12.5일)의 3.5배가 넘습니다(출처: 기상청).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그 시절엔 에어컨을 가진 집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1993년 우리나라 가구의 에어컨 보유율은 6%였습니다. 1996년에도 14%였고요. 백 집 중 여섯 집. 그게 제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현실이었습니다. 그 숫자는 1998년 24%, 2001년 36%로 늘었고, 2018년에는 87%가 됐습니다(출처: 한국갤럽).
그러니까 우리는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났습니다. 선풍기 한 대와 부채, 그리고 등목은 필수였습니다. 밤이 되면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웠습니다. 그래도 더울 때는 대야에 물을 받아 발을 담갔습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살았냐고 물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게 그냥 여름이었습니다.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수박화채
열대야가 오면 우리에겐 비장의 수단이 있었습니다. 바로 옥상입니다.
방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이 더워지면 우리는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벌러덩 누웠습니다. 방보다 훨씬 시원했습니다. 바람이 지나갔고, 하늘이 열려 있었고, 별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수박화채가 있었습니다. 수박을 숭덩숭덩 잘라 넣고 얼음을 띄운 그 대접. 옥상에 누워 수박화채를 떠먹으며 우리는 별을 봤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던 그 여름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있습니다. 그것도 시스템 에어컨입니다. 아이들은 시원한 방에서 잘도 잡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옥상에 누워 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은 것도 있는 법입니다.
해운대에서 동백섬까지, 그리고 해운대 시장
여름의 낮에는 해운대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해운대에 살면 좋은 점이 이겁니다. 더우면 바다로 가면 됩니다.
우리는 바닷가를 따라 동백섬까지 걸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 먼 거리인데, 그때는 그게 그냥 산책이었습니다. 뜨거운 모래를 밟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아무 목적 없이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는 해운대 시장이 있었습니다. 먹거리가 가득했습니다. 떡볶이집이 있었고, 제가 제일 좋아하던 골목 국숫집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2대째 이어서 하고 있더군요. 여름날 바다를 걷고 시장에서 먹던 그 국수 한 그릇. 에어컨이 없어도 여름이 견딜 만했던 이유가 아마 이런 것들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에어컨을 켜고 집 안에 있습니다. 시원합니다. 그런데 그 시절의 여름처럼 즐겁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에어컨 없던 여름을 어떻게 나셨나요? 옥상이었나요, 마루였나요, 아니면 학교 운동장이었나요? 댓글로 그 시절 여름을 들려주세요.
참고 자료
기상청 '2025년 여름철 기후특성': https://www.kma.go.kr/kma/news/press.jsp?bid=press&mode=view&num=1194521
한국갤럽 '에어컨 보유율 추이(1993-2018)': https://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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