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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 부산갈매기 아인교, 사직야구장의 추억

Grutree 2026. 7. 12. 22:26

목차


    85년 생입니다.

     

    내가 야구팬이 된 건 롯데가 잘해서가 아니라 '아주라', '마!', 부산 갈매기 같은 응원 문화 때문이었습니다. 여덟 살, 아버지와 이모부의 손을 잡고 처음 밟은 사직야구장. 저는 그날 야구가 아니라 부산이라는 도시를, 그리고 부산 사나이의 자부심을 배웠습니다. 그 여름날의 사직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아주라!" — 여덟 살 인생을 바꾼 파울볼

     

    여덟 살, 아버지와 이모부를 따라 처음 사직야구장에 갔습니다. 저는 선수가 누구인지 모르고 처음 찾아갔었습니다. 그 당시 사직운동장은 그저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어마어마하게 시끄럽다는 것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제 앞자리 아저씨에게 파울볼이 날아왔습니다. 아저씨가 공을 잡는 순간, 주변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주라!" "아주라!"  "아이씨(=아저씨), 뭐하는교. 아주소!" 아이에게 주라는 뜻의 부산 사투리입니다. 결국 아저씨는 무안한 듯 뒤를 돌아, 저에게 그 공을 던져주었습니다. 손안에 들어온 공은 묵직했고, 저는 그날 밤 그 공을 꼭 안고 잤습니다. 이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왜냐하면 사촌동생이 그 공을 슬쩍 들고 가버렸습니다. 알고 보니 90년대까지의 아주라는 지금과 달리 강요가 아니라 어른들의 자발적인 양보에서 시작된 문화였다고 합니다. 그 시절 사직에는 그런 온기가 있었습니다. 야구공 하나로 아이 하나를 야구팬으로 만드는, 어른들의 여유 같은 것 말입니다. 실제로 저는 그날 이후 야구장을 정말 자주 다니게 됐습니다.

     

    부산 갈매기와 "마!" — 3만 명이 하나가 되는 순간

     

    사직의 진짜 매력은 경기가 아니라, 응원에 있었습니다. 7회쯤 되면 어김없이 부산 갈매기가 흘러나옵니다.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벌써 나를 잊었나"

    3만 명이 목이 터져라 함께 부르는 그 떼창은, 어린 제 눈에는 노래가 아니라 거대한 파도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노래인지 몰랐지만 흘러나오는대로 자연스럽게 불러지게 됩니다. 상대 선수들이 그 위압감에 주눅이 든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직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상대 투수가 1루로 견제구를 던지는 순간, 3만 관중이 동시에 내지르는 짧고 벼락 같은 한 마디.

    "마!"

    "마!"는 '인마'라는 부산 사람답게 한 번 더 줄인 이 한 글자에는 사직의 성격이 다 들어 있습니다. 길게 말하지 않고, 딱 한 방. 원래는 아재들이 견제구가 나올 때마다 제각각 욕지거리를 하던 것이 어느 순간 구호로 정착된 것이라고 하니, 어쩌면 가장 부산다운 응원인 셈입니다.

    "마!"

     

    통닭에 맥주, 그리고 닭다리 하나

     

    사직의 응원석 풍경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먹거리입니다. 사직운동장 앞에는 치킨집이 정말 많았고, 요즘 말로 하면 폭리를 꽤나 부렸습니다. 그때는 브랜드 치킨집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치맥'이라는 세련된 말도 없었습니다. 그 시절 사직의 어르신들은 통닭에 맥주를 드셨습니다. 치킨이 아니라 통닭, 크림생맥주가 아니라 그냥 맥주. 그리고 저는 그 통닭에서 나온 닭다리 하나를 들고, 그걸 흔들며 목이 터져라 응원했습니다. 어른들은 술기운에, 아이들은 닭다리에 취해 함께 소리를 지르던 그 응원석이 제가 기억하는 사직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야구 관람이 아니라 마을 잔치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집에 가는 길은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이기면 택시, 지면 버스였습니다. 아버지는 한 번도 그 규칙을 말씀하신 적이 없지만, 저는 그날의 승패를 정류장에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택시 문이 열리는 날의 그 뿌듯함이란. 어쩌면 제가 그토록 롯데의 승리를 바랐던 건, 야구가 아니라 그 택시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사는 지금, 사직의 그 함성이 가끔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공을 건네주고,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를 걸고 노래를 부르던 그 여름밤이요.

     

     

     

    참고 자료

    나무위키 아주라: https://namu.wiki/w/아주라
    나무위키 마(롯데 자이언츠): https://namu.wiki/w/마(롯데 자이언츠)
    부산시 공식 블로그 롯데 응원문화: https://www.busan.go.kr/news/totalnews01/view?dataNo=36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