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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밥 무러 온나!" 구수한 엄마의 목소리가 골목을 울리면, 그게 우리 하루의 마침표였습니다.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건 골목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그 골목을 채우던 '정(情)'이었습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제가 서울 아내를 만나 서울로 이사를 오고,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이 바로 이 변화인데요. 삭막한 골목, 고요한 골목, 이제는 차만 다니는 골목. 골목이 놀이터였고 온 동네가 한 가족 같던 우리 세대 시절과, 학원과 집만 오가는 지금의 세대 아이들의 하루를 나란히 놓고, 세 가지 장면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친구들 집이 다 있었다.
제가 자란 부산의 골목은 길이 아니라 하나의 기지와 같았습니다. 시골도 아니었는데 그 시절엔 아이들이 골목마다 바글바글했습니다. 골목에 들어서면 친구들 집이 죄다 거기 있었으니까요. 누구네 집 대문이 어디인지, 누구네 저녁 메뉴가 뭔지 다 알았습니다. 놀다가 배가 고프면 아무 친구 집에나 들어가 저녁을 얻어먹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집 어머니도 밥숟가락 하나 더 놓는 걸 당연하게 여기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대단한 신뢰였습니다. 아이를 옆집에 맡겨도, 남의 집에서 밥을 먹여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골목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온 동네 어른이 온 동네 아이를 함께 키우던 공동 육아의 현장이었던 셈입니다. 그 골목에서 우리는 노는 법만 배운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배웠습니다.
전봇대 구덩이와 좁은 골목이 놀이터였다
골목에서는 정해진 놀이터가 따로 필요 없었습니다. 골목 전체가 놀이터였습니다. 전봇대 앞에 움푹 파인 구덩이가 있으면 그 앞에서 구슬치기 판이 벌어졌습니다. 그 구덩이에 구슬을 정확히 넣는 게 얼마나 짜릿했는지 모릅니다. 좁은 골목은 양옆 담벼락을 골대 삼아 골목 축구장이 되었고, 공이 남의 집 담을 넘어가면 초인종을 누르고 "공 좀 주세요" 하는 것까지가 놀이의 일부였습니다. 물론 벨만 누르고 그대로 도망치는 날도 많았습니다. 딱지치기는 저희 동네에선 그리 유행하지 않았지만, 대신 놀이터에 모여 다른 동네 친구들과 야구를 하고 해가 질 때까지 온 동네를 뛰어다녔습니다. 특별한 장난감도, 돈도 필요 없었습니다. 어쩌다 길에서 500원짜리 동전이라도 줍는 날이면 그걸로 친구들과 간식을 나눠 먹었고, 그러면 그날은 완벽한 하루가 됐습니다. 골목과 친구들, 그리고 해가 지기 전까지의 시간. 그것만 있으면 하루가 꽉 찼습니다.
"밥 먹어라!" 그 소리가 사라진 자리
골목 놀이에는 정해진 끝이 있었습니다. 바로 "밥 무라!" 하고 저녁 무렵 엄마가 부르는 소리였죠. 그 소리가 울리면 아이들은 아쉬워하며 하나둘 집으로 흩어졌습니다. 그 한마디가 곧 우리 하루의 마침표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서울로 올라와 아이를 키우면서,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서울은 삭막했습니다. 아이들은 학원과 집만 오갈 뿐,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했습니다. 더 낯설었던 건 놀이터의 풍경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나와서도 또래끼리 어울려 놀기는커녕, 부모가 옆에 붙어 함께 놀아줘야만 했습니다. 처음엔 이게 서울만의 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부산의 옛 동네를 다시 찾았을 때, 그곳의 골목에도 아이들의 소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제는 도시가 아니라 시대였던 겁니다. 아이들은 이제 골목이 아니라 화면 속에서 만나고, 저녁밥은 각자의 집에서 각자 먹습니다. 편리하고 안전해졌지만, 골목을 가득 채우던 그 정만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밥 먹으라는 소리에 아쉬워하며 집으로 뛰어 들어가 본 경험 자체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쉬움이야말로, 하루를 실컷 놀았다는 증거였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이 살던 동네 골목에는 어떤 놀이가 있었나요? 그리고 저녁이면 여러분을 부르던 그 목소리는 누구의 것이었나요? 댓글로 그 시절 골목의 소리를 들려주세요.
참고 자료
교육부 행복한교육 '요즘 아이들 무얼하며 놀까': https://happyedu.moe.go.kr/happy/bbs/selectHappy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204&nttId=3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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