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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 - 제사

Grutree 2026. 7. 11. 14:47

목차


    85년 생입니다.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의식이었지만 그 의식을 실제로 떠받친 것은 언제나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요즘 제사 문화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을 보며, 저는 원망보다 안도에 가까운 감정을 느낍니다. 어동육서(고기는 서쪽, 생선은 동쪽), 홍동백서(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상차림의 법도는 그토록 엄격했지만, 정작 그 상을 차리는 규칙은 단순했습니다. 여자는 부엌, 남자는 제삿상 앞. 보수적인 장남의 집에서 일 년에 다섯 번의 제사를 지켜본 아이의 눈으로, 그리고 이제야 어머니의 고생이 보이는 어른의 눈으로, 그 시절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일 년에 다섯 번, 장남 집의 숙명

     

    우리 아버지는 장남이었습니다. 제사를 지내려면 하루 전날 할머니 댁에 미리 가 있어야 했고, 벌초부터 시작해 제사를 마친 뒤에는 온 동네를 돌며 어른들께 인사를 드릴 만큼 지금 시대로 치면 FM 즉, 원칙에 철저한 분이셨습니다. 그런 우리 집에는 일 년에 다섯 번의 제사가 있었습니다. 증조할머니 기제사, 증조할아버지 기제사, 추석 차례, 설 차례, 그리고 9월 9일(?) 제사까지. 모든 음식을 직접 장만하고 상을 차려 절을 올려야 했습니다. 초파일 제사 때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음식 준비부터 제사까지 전부 어머니 혼자 감당하셨습니다. 제사의 주인은 남자인데 그 무게는 늘 여자가 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제사는 창원 할아버지 댁에서 지냈는데, 우리 집에서 차로 한 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한 시간이라고는 하나 명절에는 그 길을 오가는 것부터가 큰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건, 이 다섯 번의 제사가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저 우리 집의 당연한 연중행사였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런 제사 문화는 생각만큼 오래된 전통도 아니어서, 전문가들은 우리가 아는 형태의 차례가 18세기 무렵에야 대중에게 퍼졌다고 말합니다. 수천 년 역사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은 관습인 셈이죠. 하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 제사는 감히 의문을 품을 수 없는, 집안의 법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이에게는 잔치, 어머니에게는 노동

     

    어린 저에게 제사는 나쁘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평소에 못 먹던 맛있는 음식이 상 가득 올라왔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어른들에게 용돈도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아이들에게 제삿날은 은근한 잔칫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잔치의 뒤편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어머니의 하루였습니다.어머니의 일과는 이랬습니다. 제사 전날에는 탕거리와 생선, 나물류를 장 봐서 손질하고 밑작업을 하셨습니다. 당일 오전에는 다시 과일을 사고, 튀김과 산적 재료를 사 와서 또 하루 종일 부엌에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제사가 밤늦게 끝나고 나면, 그 새벽에 제사 음식으로 다시 상을 차려 다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마치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은 늘 고요했습니다. 적막한 차 안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는 팽팽한 무언가가 흘렀고, 어린 저는 그 날 선 공기를 그저 눈치만 보며 견뎠습니다.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건 어머니가 너무나 안쓰러웠던 밤들이었다는 것을요. 더 안타까운 건, 삼촌네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제사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눈에도 그건 공평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사는 분명 온 집안의 일인데, 그 무게는 늘 한 사람에게만 쏠려 있었으니까요. '여자가 함께 고생하는 문화'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저는 우리 어머니의 새벽을 보며 자연스럽게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결혼하며 아내에게 건넨 첫마디

     

    세월이 흘러 저도 어른이 됐습니다. 그리고 요즘 세상을 보면 제사 문화는 확실히 저물고 있습니다. 한 조사에서는 지금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60%가 넘지만, 앞으로도 계속 지내겠다는 사람은 40%에도 못 미친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이 젊은 세대가 아니라, 평생 제사를 지켜온 60대와 70대 어른들 본인이라는 점입니다. 누구보다 그 고생을 잘 알기에,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우리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보수적이고 제사를 중히 여기던 아버지가, 결혼하며 어머니와 와이프에게 건넨 첫마디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우리 집은 제사 없다"였습니다. 평생 어머니의 새벽을 지켜본 아들이자, 그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장남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조상을 덜 기리겠다는 뜻이 아니라, 더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정성을 쌓지 않겠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진짜 조상을 위하는 길은, 상을 크게 차리는 것이 아니라 산 사람이 덜 고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집에서는 제사 문화가 어떻게 바뀌고 있나요? 지키고 싶은 것과 내려놓고 싶은 것 사이에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댓글로 나눠주세요.

     

     

     

     

     

    참고 자료

    위키트리 '요즘 6070이 제사를 포기하는 이유': https://www.wikitree.co.kr/articles/1137147
    경향신문 '며느리는 제사 준비에서 빠져 이런 시대가 있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209090823001
    위키백과 한국의 제사: https://ko.wikipedia.org/wiki/한국의_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