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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추억' 태그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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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아버지와의 추억 1 - 목욕탕

85년 생입니다. 목욕탕은 아버지와 저 둘만의 시간이었습니다. 매주 일요일 오후 세 시,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집 앞에도 목욕탕이 있었지만 우리는 해운대 온천만 고집했습니다. 해운대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던 곳입니다. 어머니는 "물 더러운데 왜 새벽에 안 가노" 하고 잔소리를 하셨지만, 우리 부자에게는 별 타격이 없었습니다. 여름이면 물놀이하러 가던 그 길을, 일요일 오후에는 목욕 가방을 들고 걸어 내려갔습니다.해운대 온천, 바닷가 가는 길에 있던 목욕탕탕은 세 개였습니다. 온탕, 냉탕, 그리고 이름 모를 한약재가 들어간 탕.저는 탕에 들어가는 게 제일 싫었습니다. 발을 담그면 다리가 저려오는 찌릿한 느낌, 숨이 턱 막혀버릴 것 같은 그 느낌이 싫어서 아예 안 들어가려고 버텼습니다...

85년 생입니다. 2026. 7. 15. 13:02
[85년 생입니다.] 할머니 시리즈 1, 할매집 가는길

85년 생입니다. "부산행 SRT가 출발합니다."결론부터 말하면, 그때 그 기차는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해운대에서 울산까지, 창문을 열고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지를 수 있었던 그 기차 말입니다.그 시절 무슨 이유에서인지 할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으셨고, 할머니가 울산 현대중공업 급식소에서 일하셨습니다. 그 할아버지 댁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그 여정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선로를 가로질러 가던 해운대역 지금의 해운대역은 신시가지 구석에 있지만, 그 시절 해운대역은 바닷가가 보이는 아주 까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사방이 뻥 뚫려 있어서 동네 사람들은 선로를 가로질러 다니는 게 예사였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열차 시간에 늦기라도 하면, 자랑은 아니지만 쥐구멍을..

85년 생입니다. 2026. 7. 15. 08:02
[85년 생입니다.] 나에게 IMF란

85년 생입니다. 온 나라가 무너지던 그때 우리 집은 오히려 형편이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저에게는 오랫동안 이상한 기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중학생이던 제가 겪은 그 시절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 서랍장 맨 밑의 금뭉치 1998년 1월, 텔레비전에서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나라 빚을 갚기 위해 장롱 속 금을 내놓자는 캠페인이었습니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서랍장 맨 아래 칸에는 통장과 함께 금붙이를 모아둔 자리가 있었는데, 그날 어머니는 그것을 통째로 꺼내셨습니다.거기엔 어머니의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야자수가 그려진 사각 펜던트 목걸이였습니다. 어린 눈에도 정말 예뻐서, 저는 지금도 그 모양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85년 생입니다. 2026. 7. 14. 13:02
[85년 생입니다.] 나에게 일탈이란,

85년 생입니다. 저의 첫 일탈은 술도 담배도 아닌 '금 캐기'였습니다. 요즘 세대가 말하는 거창한 일탈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저 늘 놀던 골목을 벗어나, 걸어서 한 시간 거리까지 나가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겐 세상 끝까지 가보는 모험이었습니다. 그 모험의 세계로 저를 이끈 건 최현석이라는 친구였습니다. 그 시절 우리의 일탈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취미가 '돈'이었던 친구, 최현석 우리 반에는 최현석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박학다식한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이의 취미는 '돈'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의 취미가 돈이라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저에게 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알려준 사람이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우리의 첫 사업은 빈병 줍기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

85년 생입니다. 2026. 7. 14. 08:20
[85년 생입니다.] 아버지는 검도복을 만드셨지, 야이야이야~♪

85년 생입니다. 제가 그토록 싫어했던 그 냄새가 사실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 냄새였습니다. 아버지가 검도복 만드는 일을 시작하시면서 우리 집의 공기가 바뀌었습니다. 우린 행복했지만, 냄새만큼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서는 늘 퀴퀴한 검도복 냄새가 났고, 손톱에는 남색 물이 들어 있었으니까요. 어린 저는 그 냄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그 시절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오토바이 뒷자리, 해운대에서 문현동까지 건설 붐이 한창이던 시절, 아버지는 사우디와 일본을 오가며 일하셨고 이후 울산 조선소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그러다 가족 중 한 분이 검도복 만드는 일을 하시게 됐고, 아버지는 "가족을 도와야 한다"며 그 일에 뛰어드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85년 생입니다. 2026. 7. 13. 20:07
[85년 생입니다.] 워크맨과 MP3의 추억

85년 생입니다. 우리 집 음악의 역사는 아버지가 일본에서 들고 온 캐리어에서 시작됐습니다. 캐리어 안에서는 전축이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부품을 하나하나 조립하시고 마침내 전원을 켜던 순간, 갑자기 터져 나온 그 큰 소리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전축을 시작으로 국민학교 때는 워크맨, 중학교 때는 CD플레이어와 MD,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아이리버 MP3까지. 제 십 대는 음악을 담는 그릇이 계속 바뀌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휴대폰에서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세상 모든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그때는 노래 한 곡을 갖기 위해 참 많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집 음악의 변천사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아버지의 캐리어에서 나온 SONY 전축 국민학교 시절 우리 집 가보 1호는, 일본에서 건너온..

85년 생입니다. 2026. 7. 13. 15:52
[85년 생입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의 목소리

85년 생입니다. 카세트테이프에 그토록 마음을 두었던 이유를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그 시작은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이사를 가던 날, 다락방에서 발견한 낡은 테이프 하나였습니다. 그 안에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 우리 가족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예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래된 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해 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울컥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그 안에 담긴 것이 소리가 아니라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막으로 보낸 카세트테이프 1980년대,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을 가셨습니다. 그 시절 중동 건설 현장은 많은 한국 가장들이 가족을 위해 떠나던 곳이었습니다. 국제전화는 너무 ..

85년 생입니다. 2026. 7. 13. 10:30
[85년 생입니다.] 부산갈매기 아인교, 사직야구장의 추억

85년 생입니다. 내가 야구팬이 된 건 롯데가 잘해서가 아니라 '아주라', '마!', 부산 갈매기 같은 응원 문화 때문이었습니다. 여덟 살, 아버지와 이모부의 손을 잡고 처음 밟은 사직야구장. 저는 그날 야구가 아니라 부산이라는 도시를, 그리고 부산 사나이의 자부심을 배웠습니다. 그 여름날의 사직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아주라!" — 여덟 살 인생을 바꾼 파울볼 여덟 살, 아버지와 이모부를 따라 처음 사직야구장에 갔습니다. 저는 선수가 누구인지 모르고 처음 찾아갔었습니다. 그 당시 사직운동장은 그저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어마어마하게 시끄럽다는 것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제 앞자리 아저씨에게 파울볼이 날아왔습니다. 아저씨가 공을 잡는 순간, 주변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85년 생입니다. 2026. 7. 12. 22:26
[85년 생입니다.]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90년대 국민학교 운동회

85년 생입니다. "저 선수 죽어라 달리고 있는데요… 아! 아쉽습니다, 역전을 허용했습니다!"그 시절 운동회는 학교 행사가 아니라 마을 잔치였습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온 동네가 학교 운동장으로 출근하던 날이었죠.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축제였지만, 어른들에게는 학부모 모임이였습니다. 부모님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돗자리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고, 담소를 나누며 서로를 익히는 자리였으니까요. 다만 제 기억 속 '진짜' 운동회는 4학년까지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가족들도 오지 않았고, 예전만큼 심장이 뛰지도, 승부욕이 불타오르지도 않았습니다. 만국기 아래 함성이 울리던 그 하루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온 동네가 모이던 잔칫날 우리 학교, 해동초등학교는 운동장이 아주 넓었고 가장자리에 나무가 많..

85년 생입니다. 2026. 7. 12. 21:10
[85년 생입니다.]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 - 제사

85년 생입니다.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의식이었지만 그 의식을 실제로 떠받친 것은 언제나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요즘 제사 문화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을 보며, 저는 원망보다 안도에 가까운 감정을 느낍니다. 어동육서(고기는 서쪽, 생선은 동쪽), 홍동백서(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상차림의 법도는 그토록 엄격했지만, 정작 그 상을 차리는 규칙은 단순했습니다. 여자는 부엌, 남자는 제삿상 앞. 보수적인 장남의 집에서 일 년에 다섯 번의 제사를 지켜본 아이의 눈으로, 그리고 이제야 어머니의 고생이 보이는 어른의 눈으로, 그 시절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일 년에 다섯 번, 장남 집의 숙명 우리 아버지는 장남이었습니다. 제사를 지내려면 하루 전날 할머니 댁에 미리 가 있어야 했고, 벌초..

85년 생입니다. 2026. 7. 1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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