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 나는 그날 홈런을 쳤습니다. 하지만 그 홈런보다 더 오래 남은 건, 그 경기로 알게 된 한 친구였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동네를 걸어 다니다 시작된 야구 이야기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탐방이라 쓰고 산책이라 읽는다 6학년이 되자 슬슬 걱정이 생겼습니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가야 하는데, 다른 초등학교 아이들을 통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친구들과 탐방을 가기로 했습니다.말이 탐방이지, 사실 심심해서 온 동네를 걸어 다녔습니다. 축구부가 있던 해운대초등학교부터, 신도시에 새로 생긴 학교, 그리고 지금의 못골(?)까지. 안 가본 데가 없었습니다. 목적지도 없이 그냥 걷고 또 걸었습니다. 나에게는 그게 하나의 놀이였습니다.그러다 우연히 대우 마리나 아파트 쪽까지 ..
85년 생입니다. 그 시절 저에게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축구하러 가는 곳이었습니다. 10분 쉬는 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종만 치면 저는 조건반사처럼 운동장으로 튀어 나갔습니다. 그 시절 운동장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스트라이커, 가끔은 골키퍼 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습니다. 골을 넣는 자리죠. 그런데 골키퍼 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그라운드의 주인공도 별수 없이 골문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몸이 유연해서 날렵하게 뛰는 게 가능했거든요. 그날 모인 인원에 따라 공격수였다가 골키퍼였다가 했습니다.쉬는 시간은 딱 10분이었습니다. 2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면, 저는 교실 문을 박차고 운동장으로 달렸습니다. 10분 안에 공을 차려면 1초도 아까웠으니까요. 그리고 그 짧은 경기를, 저는..
85년 생입니다. 저는 마지막 도시락 세대입니다. 국민학교로 입학해 초등학교로 졸업한 세대이자, 도시락을 싸 다니다 급식으로 넘어간 세대이기도 합니다. 오늘 소시지를 구우며 문득 떠오른 그 시절 도시락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반찬에도 계급이 있었다그 시절 도시락 반찬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었습니다.최상위 반찬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장조림, 소시지, 계란말이. 이 셋 중 하나를 싸 오는 아이는 그날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흔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반에 마흔다섯 명이 있으면, 이런 반찬을 싸 오는 아이는 네 명쯤 됐을까요.그리고 그 시절에는 재미있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같이 밥을 먹는 무리끼리는 엄마들이 서로 연락해서 반찬을 나눠 싸 오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이 집이 계란말이, 내..
85년 생입니다. 저는 물개가 아니라 콜라병이었습니다. 그래서 깊은 곳은 안 갔습니다. 아니, 못 갔습니다. 그래도 여름이면 친구들과 장산 계곡으로 향했습니다.부모님 몰래 다녀오던 그 계곡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슬리퍼에 수건 하나, 장산 계곡 해운대에 살면 여름 피서지가 널려 있습니다. 바다도 있고, 옥상도 있고, 장산도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피서지가 옥상이었다면, 친구들과의 피서지는 장산 계곡이었습니다.장산 계곡은 입구부터 얕은 물이 많아 어린이들이 놀기 좋았습니다. 올라가다 보면 폭포도 두 개나 있었지만, 우리가 주로 놀던 곳은 입구였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무엇보다 자연이 만든 돌 미끄럼틀이 있었으니까요.준비물은 단출했습니다. 슬리퍼에 수건 하나 달랑 매..
85년 생입니다. 이번에는 반대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글이 제가 다가가지 못한 첫사랑이었다면, 이번에는 저를 먼저 좋아해 준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끝에는, 열여덟 살의 제가 고등학교 정문에서 한 후회가 있습니다. 5학년, 짝꿍이 된 아이 윤혜지(가명). 이쁘고 마음이 착했던 아이였습니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4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습니다. 미영이의 옆옆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였습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미영이 좋아하는 거 알았어, 바보 같은 놈아."5학년이 되고 같은 반이 되었고, 제 짝꿍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혜지는 적극적이었습니다.저를 좋아한다고 했고, 저를 안아주고, 뽀뽀도 해줬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주 당황스러웠고 싫은 내색을..
85년 생입니다. 그 시절 매주 월요일 아침은 지루했습니다. 지금 학교에는 없는 문화가 하나 있었습니다.매주 월요일,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교장선생님 훈화를 듣는 조회였습니다. 오늘은 그 지루했던 월요일 운동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월요일, 운동장으로 집합 매주 월요일, 0교시 종소리와 함께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집합했습니다. 2열 종대로 줄을 섰습니다."맨 마지막은 구호하지 마!"선생님의 이 말과 함께 우리는 1열부터 숫자를 세면서 앉기 시작합니다. 맨 마지막 사람은 구호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정신 차리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안 됩니다."20!""아... 돌았나.....""하지 말라니까!"자동 반사 같은 겁니다. 앞에서 숫자가 넘어오면 마지막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20!" 하고 외쳐버립니다..
85년 생입니다. 저의 첫사랑은 4학년 때 다가왔습니다. 고백한 적도 없고, 손 한번 잡아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꽃향기가 나던 샴푸 냄새와 설렘입니다. 오늘은 그 시절 4학년 교실로 가보려 합니다. 매달 봉사상을 받던 아이 "올해의 봉사상도 우리 그루가 받았습니다."봉사상. 친구들을 잘 돕는 사람에게 매달 투표로 주던 상입니다. 저는 3학년 새 학기부터 겨울방학 때까지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제가 착했던 건 아니고, 그냥 돕는 게 좋았고 행복했고, 도움을 받은 친구들의 미소가 좋았습니다.누가 무거운 걸 들고 있으면 같이 들었고, 누가 못 하고 있으면 가서 거들었습니다. 왁스로 바닥을 청소하는 날에는 제일 먼저 손을 들었고,..
85년 생입니다. 우리 시절 국민학교는 무상교육이었다고는 하나 사실 아니었습니다. 매달 학교에 내야 하는 돈이 있었고, 그 돈은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습니다. 1985년생인 저에게 그 선은 육성회비 봉투와 우유 급식이었습니다. 웃으며 쓰던 오락실과 문방구 이야기와 달리, 오늘은 조금 담담하게 그 시절 교실의 뒷면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매달 돌아오던 봉투: 육성회비라는 숙제 "엄마! 선생님이 육성회비 가져오래요~"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육성회비', 정식 명칭이 육성회비인지 월사금인지는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고, 아이였던 저에게는 그냥 '매달 학교에 내야 하는 돈'이었습니다. 국민학교는 분명 의무교육이라 수업료가 없었는데, 학교 운영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학부모에게 걷는 육성회비가 사..
85년 생입니다.국민학교 앞 문방구는 그 시절 아이들의 백화점이자 놀이터였습니다. 준비물만 파는 곳이 아니라 간식과 게임, 그리고 동네 신용 시스템까지 굴러가던 아이들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1985년생인 저는 문방구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아니, 좋아했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등굣길에는 준비물을 사러, 하굣길에는 하루의 마무리와 간식을 위해 — 하루 2회 이상 꼬박꼬박 문방구로 출근했습니다. 출근 도장을 찍듯 드나들던 그 작은 가게의 기억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불량식품 천국: 쫀디기부터 순대 꼬치까지 그 시절 문방구에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간식들이 가득했습니다. 쫀디기, 월드컵, 어포, 똘똘이, 꺼벙이, 나나콘 — 이름만 들어도 침이 고이는 이 과자들은 100원, 200원이면 살 수..
85년 생입니다. 90년대 컴퓨터 학원은 컴퓨터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컴퓨터를 향한 짝사랑을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빌게이츠님이 멋진걸 만들었지만 내가 정작 배운 건 타자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아이들에게 컴퓨터 학원은 미래로 통하는 문처럼 보였습니다. 1985년생인 저의 첫 컴퓨터, 첫 게임, 그리고 첫 디스켓 복사의 기억을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검은 화면에서 왕자가 튀어나왔다 컴퓨터를 처음 만진 건 국민학교 6학년, 친구 집에서였습니다. 친구가 정사각형 모양의 플로피 디스크를 넣고 검은 화면에 cd, dir 같은 알 수 없는 문자를 타닥타닥 치니, 갑자기 화면에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타났습니다. 그 순간의 탄성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벽돌 성전을 달리고, 점프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