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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 육성회비의 기억

Grutree 2026. 7. 7. 20:52

목차


    85년 생입니다.

     

    우리 시절 국민학교는 무상교육이었다고는 하나 사실 아니었습니다. 매달 학교에 내야 하는 돈이 있었고, 그 돈은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습니다. 1985년생인 저에게 그 선은 육성회비 봉투와 우유 급식이었습니다. 웃으며 쓰던 오락실과 문방구 이야기와 달리, 오늘은 조금 담담하게 그 시절 교실의 뒷면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매달 돌아오던 봉투: 육성회비라는 숙제

     

     

    "엄마! 선생님이 육성회비 가져오래요~"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육성회비', 정식 명칭이 육성회비인지 월사금인지는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고, 아이였던 저에게는 그냥 '매달 학교에 내야 하는 돈'이었습니다. 국민학교는 분명 의무교육이라 수업료가 없었는데, 학교 운영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학부모에게 걷는 육성회비가 사실상 강제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어른이 되고 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는 방식은 단순했습니다. 봉투에 돈을 넣어 선생님께 내는 것. 하지만 그 단순한 일이 어떤 집에는 매달 돌아오는 숙제와 같았습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며칠씩 늦게 내는 달이 있었는데, 그날 저녁이면 엄마 아빠는 대책회의를 나누거나 이모네, 삼촌네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 일쑤였습니다. 학교에서는 그럴 때마다 선생님 눈치를 보고, 혹시 친구들이 알까 또 눈치를 봤습니다. 실제로 그 시절에는 육성회비를 못 낸 아이들을 교탁 앞으로 불러 세우는 교실이 흔했습니다. 우리는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생님이 부족한 금액을 대신 채워주신 분이니깐요.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돈 봉투 하나가 아이의 어깨를 무겁게 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우유급식 시간이면 교실 밖으로

     

    육성회비보다 더 또렷하게 남은 기억은 우유급식입니다. 그때 우유급식은 모두에게 나오는 게 아니라 신청한 학생만, 그러니까 우유값을 낸 집 아이들만 먹는 것이었습니다. (가끔 우유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먹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2교시가 되면 당번이 초록색 궤짝에 우유를 받아 왔고, 교실 여기저기 우유갑 뜯는 소리가 났습니다. 왜 그렇게 우유 먹는 애들은 많아 보였는지 그 시간이 되면 '꼬르륵' 거리는 배고픈 배를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최대한 교실 밖으로 나가 있었습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거나 복도를 서성이다가 수돗가에서 찬물을 들이마시며, 우유 시간이 끝날 때쯤 들어갔습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배고픔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의 문제였습니다. 나는 왜 같이 못 앉아 있었을까? 같은 교실에 앉아 있어도 우유 하나로 나뉘던 그 몇 분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선명한 걸 보입니다.

     

    무상급식 뉴스를 보며 드는 생각

     

    세월이 흘러 이제는 무상급식과 무상교육이 당연한 시대가 됐습니다. 초등학교 전면급식이 시작된 게 1998년이니, 국민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세상이 바뀌기 시작한 셈입니다. 무상급식 뉴스를 볼 때마다 진심으로 '참 좋은 세상이 됐구나' 하고 느낍니다. 적어도 지금 교실에는 점심시간, 우유 급식 시간에 밖으로 나가는 학생들은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떤 아이도 육성회비 때문에 선생님과 친구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분명히 나아졌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남는 게 있다면, 그 시절 교실에서만 느낄 수 있던 정 같은 것들입니다. 부족함을 서로 알기에 우유를 나눠마시며, 우리 육성회비를 대신 내줬던 "김동수 어머니" — 그 온기까지 함께 옅어진 것 같아 가끔 아쉽습니다. 부족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며 풍족해진 교실에도 그 시절의 다정함과 친구들의 정은 남아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여러분의 교실에는 어떤 기억이 남아 있나요? 육성회비 봉투든, 우유 급식이든 — 괜찮으시다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같은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참고 자료

    위키백과 대한민국의 학교 급식: https://ko.wikipedia.org/wiki/대한민국의_학교_급식
    클리앙 국민학교 육성회비 회고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6486440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급식):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cafeteria.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