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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 “나는 홈런을 쳤다.

Grutree 2026. 7. 27. 08:04

목차


    85년 생입니다.

     

    85년 생입니다. 나는 그날 홈런을 쳤습니다. 하지만 그 홈런보다 더 오래 남은 건, 그 경기로 알게 된 한 친구였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동네를 걸어 다니다 시작된 야구 이야기를 세 가지 장면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탐방이라 쓰고 산책이라 읽는다

     

    6학년이 되자 슬슬 걱정이 생겼습니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가야 하는데, 다른 초등학교 아이들을 통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친구들과 탐방을 가기로 했습니다.

    말이 탐방이지, 사실 심심해서 온 동네를 걸어 다녔습니다. 축구부가 있던 해운대초등학교부터, 신도시에 새로 생긴 학교, 그리고 지금의 못골(?)까지. 안 가본 데가 없었습니다. 목적지도 없이 그냥 걷고 또 걸었습니다. 나에게는 그게 하나의 놀이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대우 마리나 아파트 쪽까지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 공터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 또래 아이들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걸 우린 동네 대항전을 신청했고, 대결은 일주일 뒤였습니다.

     

    대우 마리나 공터, 동네 대항전이 열리다

     

    일주일 뒤 대결은 시작됐다, 그 공터는 그들의 홈구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잠시 신발끈을 묶고 시작했습니다.

    장비나 유니폼이 대단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냥 공터에 모여, 있는 것들로 편을 갈라 붙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게 월드시리즈 못지않았습니다. 동네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으니까요.

     

    첫 타석, 그리고 홈런

     

    대망의 그날, 저는 1번 타자로 첫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상대 투수가 첫 공을 던졌습니다. 저는 그냥 보냈습니다.

    '벌거 아니네'

    칠 수 있었지만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초구부터 덤빌 이유는 없었으니까요. 상대를 한번 재보는 여유, 1번 타자의 품격이랄까요.

    그리고 다음 공. 훗.

     

    "홈런!!!!!!!!!!!"

     

    저는 그 공을 그냥 담장 너머로 넘겨버렸습니다. 공이 쭉 뻗어 나가던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사실 이 경기를 길게 이야기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극적인 명승부는 아니었거든요. 우리가 10점 차로 이겨버렸으니까요. 접전은 무슨, 처음부터 끝까지 일방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상대의 화만 잔뜩 돋워놓고 유유히 우리 동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단골 분식집에서 승리의 회포를 풀었습니다. 떡볶이 국물에 그날의 홈런을 몇 번이고 다시 돌려봤습니다. "야, 그 공 봤나?" "쭉 날아가더라." 그날 우리 수다의 반찬은 온통 그 홈런이었습니다.

    진짜 재미있는 건 그다음입니다. 그때 만난 그 친구를,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서로를 바로 알아봤습니다. "어, 너!" 우리를 10점 차로 이긴, 아니 우리한테 10점 차로 진 그 동네 야구의 상대였으니까요. 그날 이후 우리는 종종 같이 운동을 했습니다. 다만 사는 동네가 달라서였는지, 아주 친한 사이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절친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가끔 그 친구를 떠올리면, 목적지도 없이 걷다가 우연히 닿았던 그 공터가 함께 생각납니다. 인연이라는 게 그렇게 시작되기도 하나 봅니다.

     

    여러분의 동네에는 대항전이 있었나요? 축구든 야구든, 동네 자존심을 걸고 붙어본 기억이 있다면 댓글로 들려주세요.